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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잃고 개를 얻었습니다.

사람은 잘못 봤어도 세상에 나쁜 개는 없으니깐요.

by 은연주

(사진 속 댕댕이는 저와 무관한 강아지입니다.)


두 달 전쯤부터 유기견이나 구조견을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었다. 사실 그런 생각이 든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작년 여름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초겨울 무렵까지는 도저히 내 한 몸 추스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직업도 집도 없고 돈도 없고 그냥 발가벗은 채로 세상의 낭떠러지 앞에 웅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여기서 앞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홀가분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왜 아무것도 없어. 니 옆에 가족도 있고 우리도 있잖아. 나를 아껴주고 걱정해 주는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해줘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랬다.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약은 먹으라니까 열심히 먹고 상담도 꼬박꼬박 갔지만 지금 내가 낫고 있는 건지 나빠지고 있는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거기다 펫로스 증후군처럼 두고 온 우리 강아지만 생각하면 맨날 울었다. 원래 남편이 키우던 아이인데도 내가 가슴으로 낳은 것처럼 애착이 엄청났다. 남편은 하나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강아지는 너무 보고 싶어서 맨날 동영상과 사진을 보며 질질 짰다. 시어머니는 내 우울증 병세가 깊어지는 것 같으니 강아지 한 마리라도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그러면 강아지 산책 시켜야 되니깐 억지로라도 나가서 햇빛도 좀 쐬고 걷고 하지 않겠냐고, 강아지 귀여우니깐 보고 있으면 가끔 웃음도 나고 그러지 않겠냐고. 하지만 거절했다. "어머니 누가 누굴 돌보겠어요. 저는 지금 저를 책임질 자신도 없는데요. 나중에 만약 괜찮아지면 그때 데려올게요. 지금은 제가 도저히 여력이 없어요."


일을 시작한 뒤에, 우울증에서 도피하고자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다. 워커홀릭처럼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회사에 남아있는 내 모습이 영 어색했다. 몸까지 작살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포진, 중이염, 위염, 온몸이 돌아가면서 차례차례 고장이 났다. 회사는 내게 야근을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집에 가기 싫어서 회사에 남았을 뿐이다. 민달팽이가 그래도 달팽이집 하나 구했다고 안도했지만 사실 말라비틀어진 빈 껍데기였을 뿐이라 들어가기 싫었다. 자취할 때는 혼자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게 익숙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남편이 잠시 내 가족이었다고 그때가 그리운 걸까. 내가 알던 그때의 남편이 가짜라는 상실감은 금세 외로움으로 둔갑되었다. 외로움은 어느새 소리 없이 내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강아지를 키워야 할 것 같아. 그래야 내가 집에 더 빨리 들어오고, 주말에 같이 나들이도 가지. 나는 재택근무도 되고 회사에 데리고 출근할 수도 있으니깐 강아지를 안 데려올 이유도 없는 것 같아. 안락사당하기 직전인 강아지 하나 데려와서 사랑 듬뿍 주고 서로 의지할래.'


순식간에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순간적인 기분에 취해서 쉽게 결정하지는 않았다. 거의 한 달 넘게 계속 고민했다.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입양할 아이들도 만나보고, 또 어떤 날에는 다른 유기견 보호 시설에서 청소와 산책 봉사도 했다. 내가 지금 우울하다고 아이를 데리고 와도, 이 아이의 한평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15년, 20년은 함께 해야 하는데. 나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인연을 믿는다. 남편과의 인연도 비록 꼬인 인연, 악연으로 끝날지언정 우리는 인연이니깐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했다.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고 기다리던 끝에 인연, 아니 견연(犬緣)이 닿아서 구조견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되었다. 입양 계약서를 쓰는 순간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가 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남편과 나를 반반씩 닮은 예쁜 아이 낳고 싶었는데. 좋은 엄마가 돼서 잘 키울 자신 있었는데.


그래 나 진짜로 열심히 살아야지. 돈도 많이 벌어야지. 얘 먹여 살리려면 진짜 씩씩하게 잘 살아야 돼. 내가 지금 우울할 때가 어딨어. 나에게는 먹여 살릴 토끼 같은 자식이 있잖아. 나는 개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계약서를 다 쓰고 마지막에 사인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한참을 망설였다. 내가 여기에 사인을 한다는 건 곧 남편과 함께 키우던 강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뜻했다. 남편의 강아지는 10살 넘은 노견인 데다가 성격도 오냐오냐 자라서 버르장머리가 없었다. 강아지 사회성이 아주 안 좋았다. 지가 사람인 줄 알고 다른 강아지들을 싫어했다. 그럼 내가 새로운 강아지를 데려오면 앞으로 우리 강아지랑 함께 있는 그림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노견이 있는 집에 어린 새 강아지를 들이면 노견은 이제 자기는 갈 때가 다 되었다고 죽을 준비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강형욱 씨가 했던 말인 것 같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내 마음속엔 오직 남편의 강아지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 구조견을 입양하는 건 남편과의 미래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혼을 받아들여 놓고도 은연중에 ‘혹시나’ 하는 1%의 희망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이성적인 판단이 올바르게 되지 않는 정신 상태라 그런 걸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기도 한 지난한 감정놀음이 계속되었다.


지금 남편이 받는 대학병원 치료의 예후가 좋다면 언젠가 낫지 않을까. 남편이 무슨 번개 맞고 감전된 것도 아닌데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기대감이 있었다. 다 헛된 집착인 걸 알면서도 망상 아닌 망상을 가끔 상상했다. 내게 입양신청서는 마치 나 자신에게 하는 이혼 선언과도 같았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남편과 나와 강아지가 산책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약간의 작은 희망을 스스로 접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희망을 스스로 버렸다. 곧 새 식구를 맞이한다. 남편에게 유기된 나와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된 아이, 우리 둘이서 이 힘든 세상을 잘 헤쳐가봐야지. 나는 이렇게 낭떠러지 대신 미래를 향해 또 한걸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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