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자기 세계에 갇혀있구나.
때는 작년 9월 어느 일요일 낮이었다. 그날은 오후 늦게 우리 아빠랑 시아버지가 두 번째로 만나기로 약속된 날이었다.
홍길동. 휴대폰 화면에 갑자기 남편의 이름이 떴다. 진동 소리가 6평 원룸의 적막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두 달 단기임대한 오피스텔이 내 집이었다. 매트리스 토퍼 하나 깔아 두고 여관방 하숙생처럼 지냈다. 그래도 그 관짝 같은 공간이 유일한 내 쉼터였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걸 그 누구도 모를 때였다. 지금이야 네댓 명의 친한 친구들이 사연을 알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면 좋길 바랐다.
그래서 저 휴대폰 진동음이 온전한 내 휴식을 위협하는 것처럼 들렸다. 진동과 진동 사이의 짧은 정적이 영원하게만 느껴졌다. 남편 홍길동의 전화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공황발작에 지기 싫어서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했다.
내가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캐리어 두 개 달랑 들고 한국에 들어온 건 작년 7월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짐을 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튿날 곧장 우리 아빠와 시아버지를 끼고 셋이서 삼자대면을 했다. 두 아버지들은 결혼식에서 서로 샴페인잔을 부딪힌 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결혼식 회포를 풀기에도 너무 이른 시기였다. 엄마 아빠는 아직 주변에 결혼식 인사를 다 돌리지도 못했을 무렵이었다.
아빠는 내가 한국에 들어가기 며칠 전에서야 사건을 알게 되었다. 한 달 넘게 엄마 아빠의 연락을 피하며 남편에게 유기된 사실을 꽁꽁 숨겼다. 부모님은 학수고대하던 큰딸의 결혼이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친척들에게 해외여행을 통 크게 쏘기로 했었다. 그 여행 일정을 알고 있던 나는 이미 타국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도 기댈 곳이 없었다. 내 결혼 덕분에 해외여행까지 간다며 신난 엄마 아빠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 못 했다.
그렇게 부모님께 한참 동안 숨기다가 귀국을 며칠 앞두고서야 아빠에게 보이스톡을 했다.
“응 딸~ 잘 적응했어? 길동이랑 재밌게 잘 지내?”
“아빠....”
나는 아빠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을 왈칵 터뜨려버렸다. 아빠는 내 눈물에 놀라지도 않았나 덤덤했다.
“왜~ 힘들어? 결혼 힘들지? 외국 생활도 힘들고.“
나는 한 달 반 전에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또박또박 말하고 싶었지만, 하도 꺼이꺼이 우느라 말을 잘 이어나가지 못했다. 나 이미 한국에 돌아가는 티켓을 샀다고, 내가 너무 많이 충격받고 공황장애까지 와서 여기 있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시어머니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고. 그제야 아빠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크게 걱정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바로 다음날 아빠와 시아버지를 마주했다. 아빠는 침착했다. 시아버지께 많이 힘드시죠 하며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때는 나도 두 아버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라서 남편이 보통 고집이 아니라고, 상담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만 생각했다. 다들 이혼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당시 나는 남편이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괜찮아지면 당연히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빠와 시아버지는 입을 모아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나라고 하셨다.
“무조건 네가 건강해야 되는 거야. 너도 지금 상처가 너무 커서 치료받아야 해. 갑자기 얼마나 놀랐겠어. 길동이 치료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받을 건데, 그동안 너만 더 심각해지면 안 되잖니. 그러니 너는 너만 챙겨라.“
대충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남편의 치료를 계획할 건지, 그동안 나의 거처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어른들끼리 따로 만나서 다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두 달 정도 흘렀다. 나는 그동안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지리산에 있는 절에 머무는 걸로는 마음이 쉬이 잠잠해지지 않았다. 한국은 너무 숨 막혀서 될 수 있으면 한국을 떠날 기회만 노렸다. 그러다 잠깐씩 병원을 위해 한국에 들르는 수준으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영혼은 이미 죽은 상태에서 껍데기만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스쳐 지나갔다.
아빠와 시아버지가 두 번째로 만나는 그날, 나는 한국에 있었지만 굳이 내가 그 자리에 나갈 이유는 없었다. 니 아들놈 때문에 넋이 나간 내 딸을 책임지라고 그렇게 아빠가 따져주길 내심 바랐지만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엄마 아빠는 경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빠가 그 자리에 나가서 뭐라고 말할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짐작은 됐다. 아빠는 잠자코 듣기만 하겠지. 말을 최대한 아끼겠지.
그때였다.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 건. 방바닥에 있던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마루를 타고 내 손가락 끝에도 느껴졌다. 화면을 들었다. ‘홍길동’
3개월 만의 연락이었다.
“여보세요?”
그는 이미 타인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대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 지금 우리 아버지랑 연락이 안 되는데, 오늘 너네 아버님이랑 우리 아버지랑 만난다고 들었어. 거기 너도 가? 혹시 우리 아빠가 너네 아버님께 무슨 말할지 뭐 아는 거 있어?“
목소리 끝에 불안함이 내가 아니라 자기 아빠를 향해 있었다.
“아니 난 안 가. 서로 무슨 얘기하실지 나도 몰라. 다 힘든 상황이니 미안하다 뭐 그런 얘기하시겠지. 왜?”
“생각보다 일이 길어져서 양쪽 부모님들이 너무 상처받으시는 것 같아서.“
통화 내용은 이게 다였다. 그의 목소리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양쪽 부모님들이 너무 상처받으시는 것 같다는 말조차도 AI가 읽는 것 같았다. (남편과의 통화 후 시어머니께 얘기 듣기론, 시어머니께서 하신 멘트를 앵무새처럼 내게 그대로 옮겼다.) 자기 일인데 굉장히 남의 이혼 얘기를 말하듯 대했다. 감정이 느껴진 유일한 대목은 자기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고 싶어 하는 불안함뿐이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자기 세계에 갇혀있구나. 3개월 만에 연락해서 고작 묻는 게 그거라니. 결혼도 둘이 하고 이혼도 둘이 하는 건데, 나나 우리 아빠의 반응을 살피는 게 아니라 본인 아버지의 반응만 불안해하다니. 혹시라도 3개월간 혼자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돌아보고 감정을 추스르고 후회도 했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그는 주차장에 차 좀 빼달라고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할 때의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고 사라졌다.
지금도 병원을 가거나 상담을 갈 때마다 선생님들이 내게 자주 묻는다. “오빠는 연락 안 와요? 아직 한 번도 안 왔어요?”
“네. 한 번도 안 왔어요.”
그는 9월 어느 날 내게 차 좀 빼달라는 듯 전화 한 통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ESC 버튼을 누르듯, 그렇게 나를 지워버리고 혼자 떠났다. 이제는 나도 현실을 받아들였다. 정말 이혼이 하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한 번쯤 대화를 하고 싶다. 진심으로 사과를 받고 싶다. 그런 걸 기대하기엔 남편은 자기 세계에 너무 깊게 갇혀있는 것 같다. 차라리 내가 결혼했던 게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다고, 그런 SF소설 같은 결말이면 현실이 덜 슬플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