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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연관 검색어에 ‘은연주‘, ’은연주 브런치’가 떴다.

by 은연주

한 달 전만 해도 구독자가 100명 남짓 되었는데, 무슨 알고리즘 때문인지 1주일 새에 600여 명이 더 늘었다. 갑자기 입소문이라도 난 걸까. 몇 편의 글이 인기 글에 떴다. 그럼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조용히 내 글을 읽고 갔다.


오후 1시, 사람들이 점심 먹으며 내 불행을 읽고 체하진 않았을까
오전 12시, 누군가 잠들기 전에 읽고 행여나 악몽을 꾸진 않았을지


그러다가 정말 탄력을 제대로 받았는지 ‘요즘 뜨는 브런치북’ 1위에 두 번이나 올라갔다. 세 권의 브런치북이 다 10위 안에 있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혹시라도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덜컥 겁이 났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남편이 보고 싶은 신혼부부인척 했는데. 누가 알아볼세라 괜히 내가 쓴 글들을 쭉 한 번 훑어봤다.



이쯤 되니 이제 은연주라는 이름을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연관 검색어에 은연주, 은연주 브런치, 은연주 <이혼 연습 중> 같은 키워드가 며칠 동안 계속 보인다. 나 혹시 나도 모르게 유명해진 거야?


한때 내 꿈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모 연예인 같았다. 그런 소소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 보통 사람 아무개 씨였다.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그때는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세상이 완전히 뒤집히고 나서야, 사랑을 잃고 나서야 일상의 작은 행복을 뼈저리게 그리워하게 됐다.




나는 내가 그동안 욕심이 없어서 비교적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다니지만 일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저 매일 퇴근하고 요가를 하는 작은 하루에서 행복을 느꼈다. 큰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엄청나게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꿔본 적이 없다. 같은 나이에 연봉 5억을 받는다는 전문직 친구를 봐도 부럽지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성격이라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나도 조금 더 치열하게 살고 욕심도 부렸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던 내 수용적인 태도가 남편을 이해해 주고 감싸주다 보니 그게 결국 내게 해가 되어서 돌아온 걸까. 나도 차라리 지기 싫어서 바락바락 따지고, 핏대 높여 싸우고 내 할 말 다 했으면 이만큼 고통스럽진 않았을까.




이기적인 여자 소리를 듣는 게 백번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불쌍한 여자는 내가 자처한 것만 같다는 자책감과 무력함이 밀려왔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착하다는 말, 이타적이라는 말이 나를 등신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야 넌 진짜 보살이다.“

가끔 야무지고 욕심 있는 사람들이 했던 그 말이 사실은 욕이었다는 생각을 왜 이제야 하게 됐을까.




은연주라는 필명이 고작 아주 작은 유명세를 얻은 것뿐인데도 마음속이 크게 시끄럽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이게 이렇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읽을 대단하고 특이한 사연인 걸까. 내 작은 불행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그러면서 무의식 속에 꽁꽁 감춰둔 카산드라 증후군이 올라온다. 이걸 읽는 사람들도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안 되겠지.


실은 남편한테 다른 여자 생긴 거 아니야?, 너도 뭔가 잘못이 있겠지, 어떻게 한 사람만 잘못하는 이혼이 있겠어, 그러게 남편이 지 동생 싫어하는 거 알면서 시어머니 심부름을 왜 했어, 연애할 때는 전혀 눈치 못 챘어?


모르는 사람들의 반응이 환청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하필 설 연휴 직전에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하신 말씀까지 귓가를 맴돈다.


“너희 둘 다 계속 각자 이야기가 다르고. 서로 피해자라 주장하는데. 이제는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지.“


아버님은 그날 이혼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이혼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오셨다. 아버님은 분명 남편과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이성과 논리로만 움직이는 사람. 하지만 그날 아버님의 의도가 뭐였든 내게는 앞의 내용만 귀에 박혔다.


서로 피해자라 주장하는데

서로 피해자라 주장하는데

서로 피해자라 주장하는데

서로 피해자라 주장하는데

서로 피해자라 주장하는데


어? 내가 명백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그저 주장하는 거라고? 남도 아닌 시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날 생각을 하니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얼른 필요시 약을 까서 입에 넣었다. 공황발작이 심해지기 전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동정해 주는 것도 슬프고, 이혼 사유를 궁금해하는 것도 아프다. 은연주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매일 씩씩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이 더 단단해지려면 갈길이 아직 한참 남았나 보다.




아니, 아니지. 은연주 이름이 조금 알려진 이유는 그저 나처럼 사랑이 아픈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서, 쏟아부은 사랑이 워낙 커서 탈진한 사람들이 많아서, 매일밤 이별과 상실에 눈물 삼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거야. 그렇게 믿어야지. 나는 그들에게 눈물 대신 별 같은 글을 남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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