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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시 사랑이 생긴 날

갑자기 누군가의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by 은연주

아침부터 마음이 부산스러웠다. 입양하기로 한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었다. 내가 입양하는 강아지는 구조 당시에 이미 만삭이었던 아이가 낳은 자견이다. 원래는 4-5살 정도의 성견 입양을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예상치 못한 멍육아에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같이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면 내게 새로운 출발일 것만 같아 내심 기대되는 마음으로 오매불망 기다려온 오늘이었다.




아이를 처음 내 품에 안는 순간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말라비틀어져있던 내 마음이 다시 촉촉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임시 보호자분께서 아이 성격이 약간 내향적인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혹시라도 낯선 공간,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데 오래 걸릴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먼저 내게 폭 안기는 순간 그동안 얼어붙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지난 세월 흘렸던 눈물들이 굳어져 내 마음속에 단단한 벽이 있었는데 고작 1.5킬로의 손바닥만 한 털뭉치가 그걸 한 순간에 다 부숴버렸다. 주책맞게도 강아지를 품에 안자마자 눈물이 핑 고였다.


강아지를 품에 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런데 만약 사람 아기를 품에 안는 거였다면 이것보다 훨씬 강렬한 경험이었겠지. 내 인생에는 이대로 출산과 육아가 없는 걸까. 그런 생각에 잠시 슬퍼졌지만 ‘그래 정말 솔직히 애라도 없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해야 하는 내 현실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어쨌든 아이는 걱정과 다르게 다행히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이미 배를 뒤집어 까고 잠자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나를 본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졸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를 보니 가슴이 벅차면서도 슬펐다. 이게 바로 사랑인 걸까. 남편 때문에 내가 잠시 잃어버렸던 그 '사랑'말이다. 나는 엄마 아빠를 보면 보기 좋다가도 짠하고 그랬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똑같이 남편을 바라보며 느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그에게 이제는 추억조차 퇴색된 사랑 타령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내 품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털뭉치에게 오랜만에 느꼈다.


아이가 내게 온 덕분에 번아웃으로 가기 직전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갖게 된 것 같다. 일을 더 유동적으로 할 이유가 생겼고, 내가 회사 가있는 낮에는 동생이 집에 있어주기로 했다. 접종이 끝날 때쯤이면 날씨도 풀려서 같이 나가기 좋을 것 같다. 곧 봄이 오는 게 두렵지 않다. 봄에는 결혼기념일이 있다. 내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그런 날 따위는 이제 상관도 없을 만큼 멍육아에 진땀 흘리겠지. 나는 아마 똥X발랄한 개춘기 자식 뒤치다꺼리하면서 강아지 유치원 보내는 학부모로 거듭나겠지. 그럼 우울증도 많이 좋아지겠지. 다시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내가 태어난 날 서울에는 눈이 굉장히 많이 내렸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사랑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작고 소중한 털뭉치가 내게 온 오늘도 서울에는 또 많은 눈이 내렸다. 이 아이가 내게 다시 사랑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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