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참 쉽다. 인생이 말처럼만 되면 누워서 떡 먹게?
철없던 20대 초반의 풋내기 시절에는 내가 나를 몰라서 연애할 때마다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보다 더 먼 옛날 10대 시절에 귀여니 소설과 각종 순정만화로 연애를 잘못 배웠으니 그릇된 기대감이 어찌나 컸던지. 우리 또래들이 학창 시절 시트콤 논스톱을 보면서 대학 생활에 대한 환상을 키웠듯이, 나는 순정만화로 연애를 배우고 현실 연애에 뛰어들었다. 그러니 연애가 잘 될 리가 없지.
스쳐 지나간 연애를 통해 많이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얻은 수확은 바로 나를 알게 된 것. 나를 알자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난 '몇 살에는 얼마를 모아야 하고, 몇 살쯤 결혼을 하고, 이 정도 나이에는 몇 평 아파트에 살면서 차는 뭐를 타야지' 이렇게 인생을 정해놓고 사는 사람들과 맞지 않았다. 나는 그런 촘촘한 계획 대신 소박한 꿈이 있었다. '회사원 생활은 20년 안에 졸업하기.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들꽃 같은 글을 쓰기. 엄마 아빠처럼 텃밭을 가꾸며 건강하게 먹고살기.'
하루하루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도 1년, 3년을 잘게 쪼개서 계획하고 살진 않았다. 혹시 내가 큰 계획 없이 살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만약 교통사고 같은 내 결혼이 계획으로 피할 수만 있는 거였다면 앞으로 기꺼이 그렇게 살겠지만, 나의 결혼과 일련의 이혼 과정은 계획한다고 피할 수 없는 명백한 사고였다.
30대 미혼에게 자신을 잘 알게 된다는 말은 옛날보다 사람을 보는 눈이 더 까다로워진다는 뜻이다. 멋모르고 연애하던 20대 시절에 결혼했다면 지지고 볶으면서 서로 맞춰갔을 텐데, 어느 정도 에고가 다 갖춰진 30대에 짝을 찾는 건 스스로 타협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즉 상대방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만날 사람이 없어"가 아니라 사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못하겠어"가 더 정확한 답일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게다가 주변에서 주워듣는 게 많아질수록, 아는 게 많아질수록 괜히 현실 고려한답시고 행동만 굼떠졌다. 이미 관계에서 여러 번 상처를 받아봤기에 그걸 또 반복하고 싶은 에너지도 크게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남편은 이미 30대 후반이어서 결혼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말했었다. 나를 만나기 직전까지 1년간 열심히 선을 정말 100번은 봤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못 만났다고 했다. 남편은 '딱 올해까지만 노력해 보고 안 되면 평생 혼자 살아야겠다' 결심했는데 짝을 못 찾은 채 해가 바뀌자마자 나를 우연히 만났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직전 연애에서 기가 너무 빨린 나머지 당분간 연애는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연애는 됐고 이직 준비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찰나였다. 자기 연민으로 똘똘 뭉친 예민한 전 남자친구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탈출각만 재고 있었다. 원래 극과 극이 끌리는 게 자연의 이치라고 했나. 나는 소위 '대가리 꽃밭'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생에 고민이 별로 없었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금방 까먹었다. 뒤돌아서면 금세 즐거워졌다. 그래서 항상 나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어딘가 진중하고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좋게 말하면 그들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철없고 해맑은 내 모습을 좋아했다. 나도 나처럼 실없는 사람보다 어른스럽고 조금은 냉정한 사람들을 선호했다.
우리는 자연을 좋아하고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기는 취향이 같았다. 게다가 남편은 타고난 다크함이 살짝 있었고 나는 대책 없이 밝았다. 그래서 우리는 성격도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데 심지어 취향까지 같다고?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진짜 기다리니깐 나한테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확신했다. 남편은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여러 번이나 말했다. "5년 전에만 나타나지. 더 젊을 때 만났으면 더 재밌게 놀았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이라도 나타나줘서 고마웠고 소중했다.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노력했다. 내가 옛날에 시행착오하면서 배운 것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연애에서 금방 실패했을 것이다. 나밖에 몰랐던 내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게 된 것은 분명 세월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 말을 왜 저렇게 하지? 왜 동굴 타임을 가지려고 하지? MBTI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MBTI 덕분에 남편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늦게나마 찾은 소중한 짝이라고 생각했기에 연애하면서 더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약혼한 뒤에는 성숙한 가정생활, 서로 이해하는 부부관계 등 책을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 전에 부부상담을 찾았다. 이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책임감을 발휘하고 싶었다. 엄마 아빠처럼만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남들의 조언은 쉽기만 하지 실전에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인생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운명이 참 얄궂었다.
그래서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내게 펼쳐진 현실은 그 말에 해당하지 않았다. 내 결혼이 신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게 아닌데. 아무리 이혼을 신속하게 결정한다고 해도 슬픔이 초고속으로 사라지진 않는데.
나는 아직도 남편이 짠하고 아프다. 이 사랑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슬프다. 이혼 도장을 빨리 찍는다고 눈물 자국이 빨리 마르는 것도 아닐 테니, 별거 기간에 실컷 다 울어버려야겠다. 내 사랑에 충분한 애도 기간을 주는 것, 그게 이 별거의 의미다. 내 목표는 법적 혼인 관계가 해소되는 날부터는 더 이상 울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