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디높은 국립미술관 기간제 공무직
지난 12일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안내’ 기간제 공무직 채용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다. 매표와 안내 데스크 운영을 맡아 하는 일터. 계약 기간은 이달 23일부터 새해 2월 22일까지 두 달.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에 쉬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순환으로 주 5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곳. 수요일과 토요일엔 밤 9시까지.
고등학교 이상 학력을 갖춘 만 18세에서 60세 이하라면 지원할 수 있었다. 나도 지원했다. 여러 응시 결격 사유와 아동 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상 취업 제한자에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1차 서류 전형 문턱을 넘지 못했다. 틀림없이 그러하게. 나는 마침표를 찍듯 국립미술관 기간제 공무직이 ‘30년 언론 노동 경력을 가진 오십 대가 넘기 힘든 벽’인 걸 알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론 뮤익’ 전시 안내 영상. 2025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관람객이 53만 명에 닿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갈무리.)
앞서 ━ 지난 5월 ━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 지원’ 기간제 공무직 공모에서 1차 서류 전형을 넘어 면접에 닿았다. 전시실 스마트 관람권 태그를 소개하고 전시실 안 관람객 질서를 유지하며 움직일 쪽을 알려 주는 일. 계약 기간은 5월 16일부터 7월 20일까지 두 달. 주 5일간 순환 노동. 수요일과 토요일엔 밤 9시까지.
5월 8일 오후 세 시 오 분께.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무동으로 면접하러 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면접이 있어서 왔습니다.”
“면접관으로 오셨나요.”
미술관 사무동 현관 안내인 말. 내 인상이 ‘면접자’보다 ‘면접관’에 가까웠던 모양. 말끝이 물음표로 솟지 않고 마침표로 내려앉았다.
뜻밖이라 나는 웃었다. 어색히. “아니오, 면접 보러 왔어요”라고 말한 뒤 안내 받은 2층으로 갈 엘리베이터를 찾아 건물로 들어서는 내 뒷머리에 사무동 현관 안내실 안 두 노동자가 주고받는 말이 얹혔다. “기간제···.”
하여 내 첫 생각. ‘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에 온 건가.’
엘리베이터를 타던 이가 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처음 보는 이. 미술관 노동자인 듯했다. 나도 가볍게 고개 숙여 답인사했되 두 번째 생각. ‘나를 미술관 간부쯤으로 착각했을까.’
세 시 십 분. 미술관 사무동 2층 면접 대기실 앞에 서 있던 이에게 다가가 나는 말했다. “31번입니다.”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무슨 소리냐는 듯 내게 되물었다. “네?”
내 세 번째 생각. ‘아, 정말 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 나는 그에게 내 응시 번호를 다시 말했다. “31번요.” 웃으며.
그제서야 그가 내 말뜻을 읽었다. “아, 네. (면접자 이름이 담긴 표를 보여 주며) 여기 사인하시고 편한 곳에 앉아 기다리시면 됩니다.”
세 시 십오 분. 나는 5조. 조마다 여섯 명. 5조 면접 예정 시간은 세 시 삼십 분. 예정보다 면접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세 시 오십사 분부터 네 시 십육 분 사이. 5조 면접자 여섯 명이 한꺼번에 면접을 치렀다. 첫 일 잡으려는 젊은이. 첫 일 잡으려는데 미국에서 전시도 기획해 본 젊은이. 2019년 이후로 기간제만 해 온 젊은이. 아팠지만 건강해져 지난날 해 본 관람 지원에 너끈할 거라는 이. 전시 기획 경험까지 있는 이. 그리고 나.
기자는 자존감이 매우 큰 사람이던데 관람객을 상대로 전시 지원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내게 왔다. 기자가 하는 일도 취재원을 잘 만나는 일이라 관람객 지원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나는 말했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이 일이 많이 힘드실 수 있을 텐데요.”
내 네 번째 생각. ‘역시 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 기자 출신을 따로 막는 게 없었고, 지원할 수 있는 나이보다 네 살 아래여서 응시했는데 체력은 괜찮느냐는 질문까지 듣다니. 내 대답은 “노동조합에서 집회와 시위로 단련돼 큰 문제가 없습니다. (웃으며) 광화문에서 국회까지 행진한 적도 있습니다. 두 번이나.”
5조 면접이 끝났다. 내게 ‘기자 자존감 문제와 체력 정도’를 물은 면접관이 다른 면접관에게 뭐라 말한 뒤 웃는 소리가 면접장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결국 5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 지원’ 공무직 면접 전형에서 떨어졌다. 그 무렵 서울(관) ‘론 뮤익’ 전시를 찾는 관람객이 크게 늘더니 7월까지 53만 명에 닿았다. 하루 평균 5590명. 국립현대미술관이 문을 연 뒤 가장 많았던 것으로 들렸다.
내 다섯 번째 생각. ‘체력이 중요하긴 했겠네.’ 하여 나는 12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안내’ 공무직 지원서에 “문화체육관광부 ‘국민 체력 100’ 3등급 인증을 받았다”고 써넣었다. 체력에 큰 문제가 없는 걸 내보이려는 뜻. 서울(관)에서 떨어진 까닭을 얼마간 짚는 가늠자를 얻고 싶기도 했다. 딱 맞춰 알 도리는 없었고.
애초 내게 걸맞지 않은 일터였던 걸까. 미술관 기간제 공무직에 마침표를 두 번 찍었다. 그나저나 ‘면접관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