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냉장고와 미니멀리즘 사이에 서서
지난 18일 밤 집 냉장고가 섰다. 17년 만에. 냉동실과 냉장실 온도가 모두 ‘영상 9도’인 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음 녹은 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렸고.
“컴프레서가 죽었네요. 바꾸시려면 삼십오만 원입니다.”
19일 점심나절 집에 온 냉장고 서비스 센터 노동자. 컴프레서를 가리키며 “이게 죽어서 냉동 냉장,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 덕분에 나는 집 냉장고가 무려 17년 동안이나 쉼 없이 달려온 걸 알았다. “(서비스 단말을 내려다보며) 2008년에 사셨으니까··· 십칠팔 년쯤 쓰셨네요.”
그는 우리 가족이 골라 갈 만한 쪽도 짚었다. “(새것으로) 바꾸시는 게 낫겠습니다.”
17년이면 오래 쓴 것으로 보였다. “그래. 아무래도 바꾸는 게 낫겠지.”
▴전원 끈 냉장고. 2008년부터 17년 동안 쉼 없이 움직인 집 냉장고가 멈췄다.
19일 저녁나절 동네 가전 매장. 뽕나무 밭이 두 번쯤 바다로 바뀌었을 17년. 그동안 쓴 722리터짜리와 엇비슷한 냉장고 세상엔 ‘60개월 구독’ 체계가 펼쳐졌다.
230만 원쯤 하는 냉장고를 다달이 4만 5000원씩 내며 60개월 동안 쓰는 것. 30개월째에 닿으면 서비스 센터에서 찾아와 냉장고를 점검하고 청소도 해 준다고 했다. 당장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관리까지 해 준다니 좋을 듯싶었다.
“사만오천 원씩 육십 개월이면 이백칠십만 원인 거네.”
한집 사는 짝 생각은 달랐다. 230만 원쯤 하는 냉장고를 270만 원에 살 뜻이 전혀 없었던 것. 확고히. 나는 조용히 짝 뜻을 따르기로 했다.
▴멈춘 냉장고 냉동실에서 나온 것. 콩과 팥과 대추와 미숫가루 등속. 모두 어머니 아버지 텃밭에서 왔다.
20일 오후 집. 짝 생각이 길어지며 냉장고에서 모든 걸 꺼내야 했다. 이틀 만에 상한 것도 많아 버려야 했고. 생선으로부터 야채까지 여러 냄새가 우리 삶 무게를 알게 했다. 냉장고 앞 짝 입에서 한숨처럼 “미니멀 라이프”가 새어 나왔고.
짝과 나는 6년 전부터 사는 집 크기를 줄이려 애썼다. 줄인 집 크기에 맞춰 이것저것 버릴 만한 것을 찾아 살폈지만 아직 ‘미니멀리즘’이라 일컬을 만큼엔 닿지 못했다. 갈 길 멀어 ‘얼마큼 뒤 다시 시작할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던 차에 무겁고 큰 냉장고가 멈춘 것. 생각이 좀 더 늘어질 듯했다.
지난 2020년 김덕호는 <세탁기의 배신> 23쪽에서 “가스·전기밥솥·중앙난방·세탁기·냉장고와 같은, 가정 내 엄청난 기술 변화에도 왜 선진 산업국가에서 가사 노동은 여전히 전체 노동시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지를 물었다. 결국 같은 책 302쪽과 303쪽에 “시간 절약이 됐건 노동력 절약이 됐건 특정 목표를 지향하는 가전제품은 특정 임무에 투여되는 가사 노동 시간을 줄이지 못했다. 게다가 몇몇 경우에는 가전제품을 사용하면 노동시간이 약간 증가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덩치 큰 냉장고일수록 가사 노동을 늘린다는 얘기. 지구 앞날 자연스런 삶을 위해 우리 집 냉장고도 몸무게를 줄여 전기를 덜 먹어야겠다고 짝과 나는 생각했다. 지난 2018년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를 쓴 이나가키 에미코처럼 냉장고를 없애고 “집에선 ‘말라비틀어진 야채’만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같은 책 106쪽에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믿었던 가전제품이, 없어도 살 수 있게 됐고, 아니 없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의외로 풍요로워지기도 하고, 그렇게 되어 갔다”고 썼다. 우리 삶도 그렇게 되어 갈 수 있겠으되 발 들여놓기가 그야말로 천근만근.
▴속 비운 냉장고(왼쪽)와 상한 음식물. 20일 밤 여러 번 버렸다.
21일 오후 짝이 다시 냉장고 앞에 섰다. 뱃속을 비운 냉장고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 했다. 17년 묵은 무거운 삶 냄새였을까.
짝이 말했다. “(아들이 방학을 맞았으니) 연말엔 쉬는 일만 남았다 했는데 냉장고가 터졌어. 쉬게 두질 않네.” 한동안 집 안이 조용. 아들이 말했다. “냉장고 없이 살까?” 짝이 답했다. “냉장고 없이? 나는 살 수 있지.”
나도 읊조렸다. “새 냉장고와 미니멀리즘 사이에 우리가 섰네. 할 수 있을까. 언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