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진짜 재미는 무엇인가

교열과 댓글, 스스로 찬 차꼬

by 글 짓는 은용이

“한 집 사는 짝과 아들과 나는 달걀을 사지 않았다.”


새해 1월 12일 자 오마이뉴스 <냉장고 없이 26일째, 라면에 달걀은 못 넣었지만요> 두 번째 문단 셋째 문장에서 내가 쓴 ‘한집’이 ‘한 집’으로 교열됐다. 붙어 있던 ‘한’과 ‘집’ 사이를 띄어쓰기한 것. ‘한집’은 명사. ‘같은 집’을 뜻한다. “한집 살아 보고 한배 타 봐야 속을 안다” 같은 속담에 쓰인다.


나는 가족 사이를 조금 성기게 가리켜 말해 어깨 높이를 나란히 하려는 생각을 담아 ‘한집 사는’이라는 꾸밈말을 즐겨 썼다. 위아래 없이 한집에 잘 어울려 살려는 뜻. 누군가에게 짝을 일컬을 때 ‘집사람’이나 ‘안사람’ 같은 말을 꺼린 끝에 ‘한집 사는 짝’에 닿았다. 아들을 ‘한집 사는 친구’나 ‘한집 사는 벗’으로 일컫기도 했고. 판판한 낱말을 써 가족 사이 어깨 높낮이를 없애려는 뜻이 내 말과 몸에 밸 수 있게 일부러 쌓았다.

▴‘한집’ 뜻풀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갈무리.


‘한 집’으로 띄어 쓴 게 잘못되진 않았다. 관형사 ‘한’도 ‘같은’이라는 뜻을 나타내니까. “한 이불을 덮는다”거나 “한 하늘을 이고 산다”고 말할 때 쓰인다. ‘한집’이나 ‘한 집’이 매한가지인 것. 한데 관형사 ‘한’은 ‘하나’라는 쓰임새가 더 잦다. ‘어떤’이라는 뜻도 있고. “여기 밥 한 그릇 더 주세요”라거나 “옛날 한 산골 마을에”라고 말할 때 쓰인다.


“한 집 사는 짝과 아들과 나”를 두고 ‘아하, 집이 한두 개쯤 더 있어 굳이 한 집이라고 띄어 썼나 보다!’라고 헤아리는 이는 아마도 없겠지만, 그동안 나는 ‘한 집’보다 ‘한집’으로 뚜렷이 일컫는 게 낫다고 봤다. ‘한’과 ‘집’이 서로 붙었기에 그 안에 사는 사람 누구나 더욱 도타울 듯싶은 마음으로.


꼼꼼한 낱말 고르기를 품은 교열. 내가 글을 쓰며 즐기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시시콜콜히 따지며 내 글과 다른 사람 글을 들여다본다. “딱 한 잔만 하러” 가서는 “한잔하고 말았다”고 짚는 게 기껍다고나 할까. 영어처럼 낱말마다 띄어 쓰거나 한문처럼 죄다 붙여쓰기하지 않는 우리글엔 띄고 붙여 쓰는 재미가 유난하다. 떨어지거나 붙어 서로 다른 뜻을 품는 게 남다르기도 하고.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거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독자 댓글. 2026년 1월 12일 자 오마이뉴스 <냉장고 없이 26일째, 라면에 달걀은 못 넣었지만요>에 올랐다. 네이버에서 갈무리.


“우리 일주일 음식물 쓰레기가 어떻게 이십 리터나 되냐.”


1월 12일 자 오마이뉴스 같은 글을 읽던 짝이 내게 말했다. 냉장고가 멈추면서 일주일에 두세 개씩 내보내던 음식물 종량 봉투가 하나로 줄었다고 알렸되 내가 용량을 착각한 것.


“아, 맞다. 삼 리터지. 아이고.”


낯부끄러운 실수. 나는 3리터짜리 음식물 종량 봉투를 머리에 뒀되 글엔 일반 쓰레기 봉투 용량인 20리터를 써 넣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음식물 쓰레기가 “그렇게나 많이” 나오느냐는 독자 댓글이 나왔다. 일주일에 3리터도 나오기가 힘들다는 것. 그렇다. “일주일에 두세 개씩 내보내던 20리터짜리 음식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3리터짜리로 바로잡았다. “쓰레기가 20리터에서 40리터쯤 줄었으니”도 3리터에서 6리터쯤으로 바꿨고. 덕분에 글 쓰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다그쳐 단단히 잡았다.


댓글. 내가 글을 쓰며 얻는 또 다른 재미. 독자와 함께 숨 쉬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느낌이라 할까. 때로는 아프고 무거웠다. 아프고 무거운 댓글일수록 더 좋은 글을 쓸 밑돌로 여겼고.


교열과 댓글, 스스로 찬 차꼬요 글 쓰는 재미라 할까. 꼼꼼한 교열로 글 품을 높이려 애썼고 늘 댓글을 살폈다. 더불어 독자. 2026년 1월 21일 <냉장고 없이 26일째, 라면에 달걀은 못 넣었지만요> 조회 수가 ‘2,310’에 닿았다. 스스로 찬 교열과 댓글 차꼬가 기꺼운 진짜 까닭일 터. 덕분에 나는 즐겁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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