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노동자와 폐기물 공공 관리 덕분
1월 31일 오전 여덟 시 삼십 분께 냉장고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지난해 12월 18일 냉장고가 고장 나 멈췄으니 44일 만이다.
가로 90센티미터, 세로 85센티미터, 높이 180센티미터인 722리터짜리 덩치가 사라지자 나 같은 사람 넷이 모여 설 만한 공간이 드러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널찍했다.
큰 덩치 난 자리를 만들어 낸 이는 폐가전 무상 수거 노동자. 베테랑이었다. 숨 몇 번 붙든 사이에 십자드라이버로 냉장고 문짝 두 개를 떼고 스패너로 본체에 붙은 경첩 두 개도 뗐다. 작은 엘리베이터에 큰 냉장고를 넣기 위해. 한 손에 들리는 아주 작은 수레에 722리터짜리 냉장고 본체를 훌쩍 올려놓았다. 홀로.
그가 냉장고를 수레에 올리려고 한쪽을 얼마간 밀어 기울일 때 내가 반대편에서 손을 보태자 “잡지 마시고 그냥 계세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되레 방해가 된다는 뜻.
그는 십여 분 만에 모든 걸 홀로 해냈다. “대단하다”는 내 탄성. 힘보다 기술로 보였다. 722리터짜리 덩치를 힘들이지 않고 쉬 옮기는 기술. 오랜 경험으로 다진 솜씨. 존경해 마지않을 든든한 노동자였다.
▴폐가전 무상 수거 서비스 만족도 조사. 2026년 1월 31일 오전 8시 47분에 마무리했다.
“가장 빠른 수거 접수일은 1월 31일, 이번 주 토요일로 확인되는데 이 날짜로 접수 도와드릴까요?”
사흘 전인 1월 27일 오후 전화(1599-0903)로 폐가전 무상 수거 서비스를 신청했다. “한 분이 별도 장비 없이 수거”하기 때문에 여의치 않으면 “수거가 어려울 수 있는 점 말씀드린다”고 들렸다. 집 “바깥으로 마을버스 정도 되는 탑차가 지나갈 수 있나요?”라는 물음이 이어졌고, 나는 작은 엘리베이터에 큰 냉장고가 들어갈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베테랑 노동자 덕에 가까운 지방자치단체로 간 냉장고는 철·알루미늄·구리·플라스틱·금·은 들로 나뉘어 다시 쓰일 터. 덕분에 나는 지구에 지울 짐을 ‘아주 조금’ 덜었다는 위안을 얻었다. 고장 난 컴프레서를 바꿔 끼면 몸체 그대로 다시 쓰일 수도 있겠지만 17년이나 묵은 냉장고였으니 개연성은 낮지 않을까.
2026년 2월 2일로 냉장고 없이 산 삶 46일째. 월 전기 사용량이 378킬로와트시(kWh)에서 248킬로와트시로 130킬로와트시가 줄었다. 줄어든 요금은 3만 3,490원. 그사이 적게 먹어 몸무게도 3킬로그램쯤 빠졌다. 덕분에 발걸음 가볍고. 고기와 생선 같은 걸 모아 넣어 둘 수 없어 야채 먹는 횟수는 늘었다. 이것저것 조금씩 사다 먹으니 동네 편의점 가는 횟수도 늘었고.
심효윤은 2021년 11월 <냉장고 인류> 127쪽에 “편의점은 바쁜 현대인에게 집 밖의 냉장 창고가 된다. 동네의 공유 냉장고라고 볼 수 있다”고 썼다. 253쪽에 “공동체 냉장고는 주로 행인이 많이 지나다니는 개방된 공간에 설치한다. 전기를 쓸 수 있어야 하기에 동네 빵집이나 카페, 음식점 주변이 적합한 장소”라고 쓰기도 했다.
나는 동네 편의점을 집 밖 냉장고로 쓰기 시작한 것일까. 동네 공유 냉장고로 볼 수 있을지 곰곰 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