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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May 15. 2021

토요일 점심나절

설거지하며 생각한 것 16

 책 좀 읽다 졸다 한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짝이 “우린 빵이나 먹자” 했습니다. 벗에겐 야채와 과일 버무린 샐러드 주겠다며.

 주섬주섬. 옷 챙겨 입고 나서며 시계를 얼핏 보니 열두 시 삼사 분쯤이었어요. 양상추와 치커리를 하나씩 샀고 동네 빵집 들러 식빵 하나 사니 갑자기 비 쏟아졌습니다. 조금 젖었죠. 머리와 옷. ‘비 많이 오잖아. 음. 시원하긴 한데 젖네.’

 두덜두덜. 돌아오니 식빵 사이에 넣을 달걀 부침 마련돼 있고, 사 온 양상추와 엊그제 사 둔 방울토마토를 곁들여 먹었습니다. 느긋이. 한데 ‘이런 젠장. 단출하게 먹었는데 이게 웬 설거짓거리람.’

 달걀 부침 네 개 담았던 작은 접시. 양상추와 방울토마토 담았던 큰 접시. 식빵 놓아 두려고 쓴 작은 접시 두 개. 벗 샐러드 담았던 큰 접시. 뿐인가요. 달걀 뒤집을 때 쓴 뒤집개. 나무젓가락 하나. 포크도 하나. 아이고. 달걀 부친 프라이팬까지.

 설거지 마치고 칫솔 입에 물며 시계 보니 한 시 오십 분. 단출하게 먹어도 한 시간 오십 분쯤 들여야 사람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특히 설거지. 열심히 했지만 그다지 눈길 끌지 못한 노동. 열심히 했지만 잘한 표시가  도무지 나지 않는 일. 귀찮아 ‘에라, 모르겠다’ 얼굴 돌리면 냄새로 되살아나는 괴로움.

 어쩌겠습니까. 해야죠. 눈에 띄는 대로 나는 합니다. 눈에 띄면 바로 하겠다는 마음 다진 지 꽤 됐죠. 열심히 해도 잘한 표 안 나지만 진득이 하겠습니다. 함께 살며 마땅히 해야 할 노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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