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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Jun 12. 2021

밥풀을 긁어내며

50대 남자가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 것들

 “그래서 제가 두 개를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는 ‘맨 오브 설거지.’”

 씽스맨 말. 영화 <맨 오브 스틸> 느낌으로. 새 책 안 ‘지구 씻는 설거지맨’에서 꺼낸 생각으로 보였다. 그는 출판사 씽크스마트 속 ‘씽’과 ‘스’를 엮어 스스로 붙인 ‘씽스맨’도 영화 <킹스맨>에서 느낌을 가져왔다 했다. ‘이 사람,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네.’

 “나머지 하나는 ‘너에게 설거지를 보낸다.’”

 씽스맨이 보탠 말. 이십칠 년 전 ━ 1994년 ━ 개봉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알다니. 이 사람, 영화 좋아하는 게 틀림없는 성싶었다. 설거지 안 하는 한국 남자에게 새 책을 읽게 하고 싶다는 내 바람에 맞춘 제목거리였으니까.

 나 또한 “‘나는 네 지난날 설거지를 알고 있다’를 두고 곰곰 생각해 보긴 했다”고 말했다. ‘슬기로운 설거지 생활’까지 짚어 봤다고는 말하지 않았고. 좀 아닌 듯해서. 하하.


 편집자는 새 책 안 글귀로부터 여럿을 뽑았다. ‘50대 남자가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 것들’과 ‘한국 남자, 싱크대 앞에 서다’와 ‘설거지로 시작하는 맞살림’과 ‘설거지로 시작하는 가사노동’ 들. ‘지구 씻는 설거지맨’과 ‘살림한다! 설거지맨’과 ‘살림하자! 설거지맨’도. ‘내가 먹은 밥그릇의 밥풀을 긁어내는 마음으로’까지.

 내 눈길은 ‘지구 씻는 설거지맨’에 맴돌았다. 자꾸 마음 가되 ‘맨 오브 설거지’에 견줘 어느 게 더 가볍고 무거운지 헤아려 보진 않았다. 뜻과 문자 모두 비슷한데 왠지 느낌은 서로 동떨어진 듯해서.

 ‘내가 먹은 밥그릇의 밥풀을 긁어내는 마음으로’는 힘들고 어려워 괴로운 설거지를 잘 드러낸 제목이 될 수 있겠되 좀 길어 보였다. 하여 ‘내가 먹은 밥그릇의’를 떼어 보기로 하니 ‘밥풀을 긁어내는 마음으로’가 남았고. ‘마음으로’까지 마저 떼기로 했다. ‘긁어내는’은 ‘긁어내며’로 바꿨고.

 하여 ‘밥풀을 긁어내며.’ 설거지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이자 설거지하다가 맞닥뜨린 밥풀을 긁어내며 가슴에 닿았던 느낌까지 고스란했다. 특히 부제로 ‘50대 남자가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 것들’을 덧붙이기로 별 고민 없이 뜻을 모았으니. 새 책은 <밥풀을 긁어내며 ━ 50대 남자가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 것들>이 될 터다.


 “밥풀을 긁어내며.” 

 “오십 대 남자가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 것들.”

2021년 유월 9일 새 책 제목 회의. 사진 씽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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