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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Jul 31. 2021

후배에게 원산폭격 시키는 군대 안 다녀온 기자

밥풀 풀이 2

 “너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했잖아.”

 “무릎 꿇고 빌라는 얘깁니까?”

 “나는 필요하다면, 회사에서 말하는 이런 이런 부분은 내가 인정한다···.”

 “내가 인정하면, 회사는 두 번째 세 번째 징계를 더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라고. 옛날(2010년)에 책 (<미디어 카르텔 ━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를) 냈을 때도 그렇고, 내가 한 얘기들이 있잖아.”

 “저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선배 방식으로만 하라는 건가요?”

 “내가 판단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원만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지.”

 “······.”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렇게 안 하면 (회사에서 다시) 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

 <밥풀을 긁어내는 마음으로> 137쪽. 술에 취해 ‘후배에게 원산폭격 시키는 군대 안 다녀온 기자’가 내게 전화했다. 2014년 십일월 13일. “당신이 궁금하니까 (전화)했지”라며. 나는 그해 팔월 말 신문사에서 해고된 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를 기다리며 날마다 손팻말을 들었다. 부당한 해고니 바로잡으라고.

 그는 “지금 쭉 하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서 (전화)한 거”라며 내게 “필요하다면, 회사에서 말하는 이런 이런 부분은 내가 인정한다”고 말하고 복직을 꾀하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부당한 해고라는 내 외침을 접고 신문사 주장을 얼마간 인정해야 복직할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생각을 내 머리에 밀어 넣으려 한 것. “노동위가 ‘복직시켜라’ 해도 회사가 할 것 같아? 예전 그대로 (기자로 복직)할 것 같아? 이 조직에서 일하고픈 생각이 있다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안타까워서 그래”라며.

 신문사 누군가 그에게 주문했을까. 손팻말 든 이은용에게 겁 좀 주라고. 그날 전화가 두 번째 겁박이었다. 그는 내 부당해고 사태가 일어났을 무렵에도 점심을 함께하자더니 회사에 내 잘못을 인정한 뒤 뭔가 해결책을 찾는 게 좋겠다며 을렀다. 나는 이른바 ‘내 잘못’이란 게 회사가 만든 덫이자 터무니없는 부당노동행위로 알았던 터라 그의 말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가슴이 답답한 나머지 국밥 뜨던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체할 것 같아서.

 그걸 기억해 낸 그는 2014년 십일월 13일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나랑 있으면 소화도 안 된다며, 전에 밥 먹다가, 내가 얘기하고 있는데 밥 먹다 숟갈 팍 놓고”라고. 그는 ‘내 머리 위 하늘 같은 선배인 게 매우 중요한 사람’인 듯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내게 끼칠 게 없을 성싶었고.

 해고에 따른 복직 싸움에 한창인 내게 회사를 찾아가 잘못했다고 말하라니. 도무지 따를 수 없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선배는 하늘이니 같은 헛소리를 품고 그가 시키는 대로 했어야 좋았을까. 부당해고 주장과 복직 싸움을 접고 회사에 잘못했다 말하며 고개 숙이고 웃었어야 하나.

 아니, 상식 밖에 선 건 ‘그’였다. 엿새 뒤인 2014년 십일월 19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신문사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 무렵까지 십구 년 오 개월 동안 땀 흘린 나를 해고할 만한 까닭을 찾지 못한 것. 나는 신문사 선배랍시고 높고 단단했던 그의 콧대와 어깨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차갑고 딱딱한 그의 머리와 혀에서 우러난 말을 다시 듣고 싶지도 않고.

 나는, 몹시 굳고 단단한 당신 생각이 올바르게 바뀌길 바랄 뿐이다. 옳고 바르게. 기자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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