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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Dec 18. 2021

기사형 광고, 멈출 때 됐다

2021년 12월 14일 '기사형 광고 실태와 개선 방안 토론회' 토론문

  기사형 광고. 기사인 ‘듯싶은’ 광고. 기사인 ‘듯한’ 광고. 기사인 ‘성싶은' 광고. 어떤 꾸밈말을 쓰든 ‘광고’는 광고일 뿐. ‘기사'일 수 없고 ‘언론'도 아니다.

 소비자 눈길과 귀와 마음을 꿰 돈 벌어들이려는 미끼라 할 광고를 두고 어찌 ‘보도'라 할 수 있겠는가. 광고엔 ‘한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를 두고 여론을 형성하는 움직임'이 담기지 않는다. ‘상품 정보를 널리 알리려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다. 공익 광고가 있다지만 드물게 쓰이니 ‘언론'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언론인 것처럼' 꾸며서도 안 된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뜻. 취재 현장에 선 언론인은 이를 잘 알았다. 데스크와 사장도 잘 알았고. 잘 알았음에도 한국 언론은 오랫동안 기사형 광고를 내보냈다. 지난 10년은 말할 것도 없고 15년 넘게 해묵었다. 심지어 “광고 아닌 협찬”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지어 내더니만 아예 ‘광고 같은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9월 25일 자 <전자신문>에 ‘두 가지 맛 신개념 주스’라는 기사가 인쇄됐다. 칸막이를 둔 주스 한 통 안에 오렌지와 포도 즙을 따로 담아 두 가지 맛을 모두 맛볼 수 있으니 새롭다는 것. 오랫동안 전자정보통신 쪽 일간 신문으로 입지를 다졌고, 그해 9월 22일 창간 30주년을 맞았던 <전자신문>에 ‘주스 맛’ 기사는 처음. 자연스레 <전자신문> 안팎 입길에 오르내렸는데 알고 보니 500만 원짜리 협찬 기사였다. 서울우유협동조합으로부터 협찬을 받아 온 광고국 직원이 편집국 한 부장에게 보도를 요구해 뜻을 이뤘던 것. 낯부끄러운 줄 모른 채 돈만 좇은 부장이요, 돈만 밝힌 편집 체계 아닌가. <전자신문> 제호와 소속 노동자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임에도 아랑곳없이.

 MBN도 2014년 10월 25일부터 12월 27일까지 두 달 동안 보도 프로그램 ‘경제 포커스’에서 농협 하나로마트가 파는 과일과 해산물 따위를 방송 소품으로 쓰며 화면에 여러 차례 나오게 하고 진행자 입에도 올렸다. 그해 12월 6일엔 한국전력공사 상호를 화면에 나오게 하고 진행자 입에 올려 보도인지 광고인지 모를 방송을 내보냈고. 시청자를 우롱한 것.

 참으로 아프고 답답하다. 오랫동안 ‘기사인 듯한 광고’와 ‘광고 아닌 척한 기사’로 독자를 낚아 왔다는 얘기니까. 낚인 독자가 ‘이거, 광고잖아!’라고 깨닫고 눈살 찌푸리며 돌아설 때마다 언론을 향한 신뢰가 무너졌을 터다. 그런 줄 잘 알았음에도 기사형 광고를 바로잡지 않은 채 그저 ‘먹고사는 게 먼저’라는 듯 입 다물고 고개 돌리기 일쑤였던 언론인. 무엇을 어찌 다잡아야 할지 곰곰 짚어 보기 바란다.

 지난 2018년 <한겨레21>의 취재용 화장품업체 ‘페이크’가 기사처럼 여기저기 보도되더니, 올해엔 <뉴스타파>의 ‘체리 박사’마저 뒷광고 표시 없이 방송에서 웃을 수 있었다. 돈만 들이면 상품에 ‘언론 신뢰’를 얼마든지 덧씌울 수 있다는 얘기. 한국 언론 가운데 “돈 주시면 기사 써 드린다”고 공공연히 밝힌 곳 있던가. “돈 주시면 어떤 상품이든 방송해 드린다”고 말한 곳 또한 있는가.

 멈출 때가 됐다. 이미 늦어 서둘러야 한다. “앞으로는 ‘기사형 광고’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 어떨까. 시민으로부터 수탁한 알 권리와 공정 보도 책임엔 ‘기사형 광고’ 따위는 없었다. 하니 ‘기사형 광고’에 낚인 독자가 언론을 사기꾼으로 보는 것 아닌가. 습관적으로 독자를 속여 광고 이득이나 꾀하는 집단. 군부 독재 서슬에 눌린 끝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언론 자유”를 외치며 떨쳐 일어난 선배 언론인이 이런 꼴을 봐야 하나. 여기저기 밤낮없이 뛰는 현장 언론인이 독자 비웃음에 스러져야 하는가. 오래전에 멈췄어야 했다. 멈추는 게 옳다.

 공정 언론 체계를 굳게 세우겠다며 ‘법 아래 행정 규제’부터 서두르는 건 신중해야 한다. 권력이 언론에 자꾸 손대려 들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개연성이 크니까. 짜임새와 기능을 두고 여러 지적과 비판이 있긴 하되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같은 민간 기구가 기사형 광고 관련 문제에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데 눈길을 둘 필요가 있겠다. 실제로 뉴스제휴평가위가 <연합뉴스>를 제재한 뒤로 몇몇 매체가 스스로 기사형 광고를 쓰지 않기로 했고, 관련 대행사도 장사가 안 돼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민간 자율 규제 실마리라는 얘기. 하니 공공성 짜임새를 단단히 갖춘 민간 ‘통합형 자율 규제 기구’에 더 많은 뜻을 모아 보는 게 옳겠다.

 매체 안에서도 언론 노동자가 뭉쳐 힘쓸 바가 있다. 노동조합이 있는 언론사 단체협약에는 대개 ‘공정보도위원회’나 ‘공정방송위원회’ 같은 민주 언론 실천 체계가 담겨 있다. ‘공정 보도 체계’가 언론 노동자의 무거운 노동 조건인 게 입증된 지 오래고. 노사 공정 보도 협약이 사문화했다면 언론 노동자가 되살리자. 아직 민주 언론 실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면 함께 만들어 내고. 매체 안에선 오로지 노동조합 민주 언론 실천 체계만이 족벌 사주나 기업 주주에 맞서 버틸 수 있다. 특히 ‘기사형 광고’와 ‘광고 아닌 척한 기사’ 같은 독자 우롱 행위를 끝낼 밑바탕 힘일 터다.


By Eun-yong Lee


�2012년 9월 24일 <전자신문> 온라인판에 게재된 두 가지 맛 주스 기사. 이 짧은 기사를 그해 9월 25일 자 종이 신문에 인쇄하는 대가로 500만 원을 받았다. 광고 영업 사원의 부탁으로 한 부장이 직접 기사를 쓴 뒤 부서 막내 기자 바이라인을 달아 내보냈다. 막내 기자는 신문이 인쇄된 뒤에야 자기 이름이 도용될 걸 알았고. <전자신문> 공정보도위원회가 문제 제기를 해 책임을 물었다. 뒤늦게 부끄러운 줄 알았기 때문일까. 온라인판 보도 바이라인을 막내 기자에서 부장으로 바꿨고, 2021년 12월 현재 <전자신문> 온라인에서 기사가 아예 사라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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