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일월 1일 이은용 드림
2022년. 늘 생생하실 거라 믿습니다. ✊
“언젠가 터질 거야!”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20년 전 대학 가요제 지역 예선에서 세 번이나 떨어졌던 록밴드 ‘활화산’의 대표곡 ‘터질 거야’ 노랫말 때문이다. ‘활화산’은 영화 <즐거운 인생> 안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다.
“당신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살아!”
코끝이 시리고 눈에 눈물이 고인다. 공부 잘하는 두 아들 사교육비를 마련하려고 낮엔 택배, 밤엔 대리운전기사로 뛰는 성욱(김윤석 분)이 “나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서 이렇게 사는 줄 알아!”라는 아내의 성화에 되돌려 준 대사 때문이다.
“끝까지 노래할 거야!”
기어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활화산’이 20년 만에 선보인 새 노래 ‘즐거운 인생’의 가사에 담긴 명예 퇴직자 기영(정진영 분)·성욱·기러기 아빠 혁수(김상호 분) 등 불쌍한 아버지에게 이입된 감정이 하나로 모여 분출한다.
지난달(2007년 구월) 12일 개봉한 <즐거운 인생> 관람객이 117만 명을 넘어서며 장기 상영되고 있다. 웃으라고 만든 영화인데 소리 죽여 우는 아저씨·아주머니가 많다고 한다. 코미디를 보며 운다?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해 보자. 먼저 토요일 아침 일찍 짝과 함께 가까운 영화관으로 달려간다. 미리 영화 정보를 챙기지 말자. 그냥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한국 영화를 골라 조조 할인으로 반값에 즐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되 짜증 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한국 영화'가 깊어졌다. 혹시 돈 쏟아붓느라 내용이 어설픈 영화를 만난다면 인터넷에 혹독한 댓글을 달아 주는 것도 좋겠다.
최근 연세대 남북한 직업연구센터가 지목한 ‘10년 뒤 쇠퇴할 직업 10개’에 영화배우도 포함됐다. 한미 FTA에 따라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 수(스크린 쿼터)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그럴까. 좌석 앞뒤 간격이 1m도 되지 않아 불편함을 참아 가며 영화를 즐기던 시절에는 스크린 쿼터가 절박했다. 직배 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뱀까지 풀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휴대폰에 살아 숨쉬는 ‘입소문’이 좋은 영화를 만들도록 끊임없이 부추긴다. 영화를 즐기는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한국 영화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즐거울’ 것이다.
박강두(송강호), 36세, 침 흘리며 낮잠을 자다가 깼는데 얼굴에 100원짜리 동전 몇 개가 붙었다. 평범하다 못해 좀 모자란 듯 보인다. 박희봉(변희봉), 59세, 강두의 아버지, 서울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간이매점을 운영한다. 손님에게 팔 오징어 다리 열 개 가운데 하나를 강두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은근슬쩍 협박하고 능청스럽게 다독인다.
박남주(배두나), 25세, 희봉의 막내딸인데 수원시청 양궁 선수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활시위를 놓지 못하는 게 흠이다. 박남일(박해일), 29세, 희봉의 둘째 아들인데 속칭 ‘도바리(도망치기) 고수’다. 아무리 살펴봐도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박현서(고아성), 14세, 강두의 딸. 박희봉의 말로는 ‘강두가 사고 쳐서(?) 낳은 딸’인데, 이 가족의 한가운데이다.
영화 ‘괴물’에서 만난 주인공들이다. 아니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냥 옆집 아저씨고 동생이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이 누군지 헷갈린다. 박강두가 상대적으로 화면에 많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약하다. 생긴 것, 걷는 것이 조금 우스꽝스러운 괴물도 주인공은 아닌 것 같다. 또 어찌 된 게 괴물이 ‘나 이렇게 생겼어요’라며 영화 초입부터, 그것도 화창한 낮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게 뒤로 넘어갈 만큼 통쾌하다. 왜냐고? 이른바 ‘할리우드 영화처럼’에 뺨을 날려 줘서다. 기자는 괴물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정확하게는 박희봉이 “현서야∼ 네 덕분에 우리가 다∼ 모였다”며 오열할 때부터다.
영화 괴물은 요즘 우리 사회와 관객 사이에 놓인 프리즘인 듯하다. 관객 시선(빛)이 괴물(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산돼 무지개가 됐다. 무지개에는 ‘관객의 느낌대로’가 담겼고, 앞뒤 없이 떠오르는 일곱 색깔은 △오만한 미국 △소중한 환경 △태만한 공권력 △강력한 시민의 힘 △화려한 디지털 영화 △자랑스런 한국 영화 △화장하지 않은 배우(배두나)다.
두 시간쯤 투자할 가치가 넘치는 영화다. 괴물을 보러 가실 분께 전하는 외침, “여러분∼ 송강호가 범인입니다!”
By Eun-yong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