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꼬리도마뱀(whiptail lizard)은 무성생식(asexual reproduction)을 한다. 암컷과 수컷이 만나 교미할 필요 없이 난자만으로 새끼를 낳는 것. 왜? 비가 찔끔거리고, 방울뱀이 많은 애리조나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 간편한 종족번식 수단이 필요해서? 그냥 귀찮아서?
이 친구들, 가끔 야릇한 행동으로 한 번 더 시선을 모은다. 암컷이 다른 암컷 등으로 올라가 생식기를 맞댄 뒤 교미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레즈비언 도마뱀’으로 여겼다.
하지만 채찍꼬리도마뱀을 레즈비언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 무책임할 수도 있다. 채찍꼬리도마뱀이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야. 그저 심심했을 뿐이야!”라거나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인사하는데 뭐 잘못됐어?”라는데, 사람 말을 하지 않는 까닭에 인간이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아직까지 채찍꼬리도마뱀이 ‘왜’ 레즈비언처럼 행동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레즈비언처럼’이라는 해석도 ‘사람이 보기에’ 그렇다는 것일 뿐. 그런 행동이 관찰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그 관찰에도 문제가 있었다. 인위적인 공간 ━ 실험상자 ━ 안에서만 관찰된 현상인 것. 사로잡히지 않은 자연 속에서 채찍꼬리도마뱀 암컷이 다른 암컷 등에 올라탄 것을 봤다며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선 사람 ━ 과학자 ━ 도 없는 상태다.
여기서 잠깐 턱을 괴어 보자. 드넓은 애리조나 사막에서 채찍꼬리도마뱀 두 마리가 아주 우연히 마주치는 것과 실험상자 안에서 여러 마리가 부대끼는 상황은 확실히 다르지 않을까. 채찍꼬리도마뱀의 성적 취향이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막과 실험상자에서 행동이 똑같을 수도 있다. 좁은 상자에 갇힌 채찍꼬리도마뱀이 그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거나 영역을 다투는 일일 수도 있겠다.
1980년대 후반 과학기술계 논쟁거리였던 채찍꼬리도마뱀의 흥미로운 행동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렸다. 끝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실험을 근거로 한 추론·분석과 진짜(fact) 사이가 가늠키 어려울 만큼 멀어서다.
가끔 쥐 실험 결과를 들고 나타나서는 ‘머지않아’ 사람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처럼 너무 쉽게 말해 버리는 과학자가 있다. 그게 언제쯤이냐고 물으면 대충 얼버무리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