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으로 1박 2일 만만치 않은 지리산을 만나다!

1박 2일 지리산 종주 산행후기

by 이청어람


20대 초반에 문순태 작가의 소설 <철쭉제>를 읽고 나서 막연하게 지리산을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세석평전으로 올라가는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뿐만 아니라 지리산에 대한 묘사도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산사랑 산악회에서 8월 셋째 주에 지리산 1박 2일 종주산행을 한다는 공지글이 올라왔다. 난 내 처지를 생각지도 않고 신청을 해 버렸다. 7~8월에 업무적으로 바쁜 일들이 몰려 있었고, 산행을 안 한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말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잠도 제대로 못 이룬 채, 사당에서 버스에 올라 백무동을 향했다.


친구에게 등산 가방도 빌리고, 스틱도 빌려 놓은 상태다. 지금까지 스틱을 사용해 본 적도 없다. 이렇게 어설픈 초보자가 지리산을 향해 가고 있으니 심장은 두근두근했다.


산사랑 B팀의 1박 2일 지리산 종주 코스는


백무동(함양)-> 한신계곡-> 세석대피소-> 장터목대피소-> 제석봉-> 천왕봉-> 중봉-> 치밭목대피소-> 유평마을(대원사길) 이다.



1일차(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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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동에 내려서 A팀은 장터목대피소를 향하고, B팀은 세석대피소를 향해 한신계곡으로 올라갔다.


10kg 조금 넘는 배낭을 메고, 익숙하지 않은 스틱을 들고서 팀을 천천히 따라갔다. 비행기가 뜨기 전 연료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처럼 나도 몸이 적응하기까지 초반에 에너지가 많이 쓰였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한신계곡 코스는 나무숲이 어우러져 햇빛을 막아주었고, 계곡 따라 내려오는 물소리도 제법 크게 들렸다. 외부 조건은 걸을만했는데 내부 조건은 그리 편하지 않아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다 종주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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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정오가 좀 지났을 때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조별로 점심을 먹었다. 역시 밥을 먹으니 허기도 가시고, 몸도 적응이 되는지 그 뒤로는 훨씬 편안해졌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초반엔 보이지 않던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왔고, 사진도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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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이 넘어갈 때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잠시 휴식했다. 물속에 풍덩 들어가는 몇몇 분들도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인데도 어린아이처럼 덤벙덤벙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세석대피소를 오를 때까지 숨은 격하게 차올랐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로 가는 첫째 날 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초보자가 팀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었다.


조장님은 친절하게 스틱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후미 대장님은 초반에 적응 안 될 때 보조를 맞춰주어서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여옥님은 먹을 것도 챙겨주고, 괜찮은지 물어봐 주며 세심하게 살펴주어서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재은님과 함께 가니 든든한 빽이라서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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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대피소에 도착하고 나니 턱까지 차오르던 숨이 편안해졌다.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을 배낭과 함께 내려놓고, 조별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버너에 불이 안 켜져서 씨름을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버너의 불을 켤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훈제 닭고기와 쌈,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라면은 발열팩으로 끓이려다 실패해서 다시 버너에 더 끓이는 소동도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저녁을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산에서 1박이 처음인지라 이런 과정조차 재미로 여겨졌다.


백무동에 내려 출발 전 입구에서 화장실을 가고, 세석대피소에 도착할 때까지 참아야 했는데,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다행히도 세석대피소는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깔끔했다. 그러나 수도는 없어서 손을 씻을 수는 없다. 대피소는 예약제로 이루어졌고, 사전에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방이 나눠져 있고, 번호로 정해져 있어서 편했다.


다만 코로나 이후부터 모포를 주지 않아 깔개나 침낭으로 각자 준비해야 된다. 난 무게 때문에 수건을 베개로 삼고, 준비해 간 경량패딩을 깔고 잤다. 밤 9시에 전체 소등을 했고,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아서 음악을 들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잠을 설쳤다.



2일차(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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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가 되기 전 기상을 했고, 배낭을 정리한 다음 3시 30분에 장터목대피소로 향했다. 사방이 깜깜한 지리산 길, 달님과 별님만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리온 별자리도 보였다. 난 양손에 스틱을 잡은 채, 한 손에는 손전등까지 들고 가니 그 새벽에 손이 열 일 하고 있었다. 손이 편하려면 헤드랜턴을 가져갔어야 했는데...


풀벌레들이 자려다가 깜짝 놀랐는지 곳곳에 울음소리가 들리고, 풍뎅이들도 간혹 보였다.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왔다. 장터목에 도착하기 전에 서서히 여명을 만났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느 인생이든 어둠이 지나면 빛을 만난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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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해서 누룽지와 양송이 수프에 라면을 넣고, 정체가 불분명한 퓨전음식을 해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이곳 지리산이 아니라면 이런 퓨전음식 먹을 기회가 어디 있을까 싶다.


천왕봉을 코앞에 남겨두니 마음이 설렜다. 평소에 먹지도 않던 아침을 든든히 먹고, 선두 대장님을 따라 천왕봉을 향해 걸었다. 이 길은 또 다른 모습이다. 계곡길은 물길을 따라 올랐고, 장터목까지는 어두운 밤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드디어 시야가 탁 트인 지리산의 본연의 모습을 보면서 걸었다.


바로 이거다. 나의 위치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운무에 쌓인 산등성이를 볼 수 있는 곳 말이다. '참으로 높구나, 끝없이 펼쳐진 산자락이 아름답기 그지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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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 어쩌면 작은 성취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편안함은 있었을지언정 이곳에 이렇게 서서 저 운무들을 바라보지는 못했을 테니까.


여기서는 이후에 일어날 일 들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왕봉의 감격을 뒤로하고, 다음 장소인 치밭목대피소로 향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할 것이다.


치밭목대피소에서 도착하여 햇반을 구입하고, 라면도 끓여서 남은 상추와 멸치볶음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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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한 분이 밤잠을 설치고, 땀을 많이 흘려서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어지러움도 생긴 것이다. 점심도 못 먹은 채 치밭목대피소에서 잠들었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가까운 두 분과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새재로 하산해서 대원사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는 새재 쪽이냐 유평마을 쪽이냐 의논하다가 하산길이 완만해 보이는 유평마을 쪽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유평마을 쪽으로 가는 길은 만만하지 않았다. 지도와는 다르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돌과 바위가 많아서 다리의 가동 범위가 아주 컸고, 중심을 잡느라 에너지 소모도 많았다. 배낭은 왜 점점 더 무거워지는지 알 수 없다.


내 배낭에서 빼놓고 왔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보조 배터리 한 개만 가져왔어도 좋았는데...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겨왔지만 안 쓴 것도 있었다. 난 그때 깨달았다. 배낭의 무게와 인생의 무게는 가벼울수록 좋다는 것을 말이다. 배낭도 인생도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재은님이 휴대폰을 분실한 해프닝도 있었다.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유턴해서 찾아다니느라 엄청 고생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가 그 휴대폰을 주워서 선두로 먼저 가 버린 것이다. 지리산에 있는 대피소에선 휴대폰이 터지지만 골짜기로 들어가면 있으나 마나 한 먹통이 된다. 휴대폰이 안 터지다 보니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마음고생 몸 고생을 한 것이다.


만약에 혼자서 산행길에 나섰다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휴대폰도 안 터지는데 어찌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중간중간에도 휴대폰이 터질 수 있도록 중계기를 세우려면 비용이 많이 들까. 다른 측면에서 환경문제로 못하는 걸까. 여하튼 휴대폰이 안되니 불편함이 느껴졌다.


도착지 2km를 남겨놓고, 허벅지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잠시 쉬면 다시 힘이 나곤 했는데 쉬어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무거워짐과 동시에 마음도 무거워졌다. 내 컨디션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천천히 한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갔다.


나와 비슷하게 최근에 산행을 안한 동지분이 있어서 그나마 동병상련을 느꼈다. 끝까지 나의 보폭을 맞춰준 여옥님 눈물 나게 고마웠다.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한번 실감했던 산행이다. 선두 대장님, 우리 8조 조장님, 후미 대장님, 마음을 살펴준 재은님, 마지막에 배낭을 들어준 성민님, 끝까지 함께 한 여옥님을 비롯해서 팀원의 지지와 격려가 큰 힘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리산 안 가도 되었다. 집에서 편하게 쉬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도전을 했고,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지만 결국 B팀들과 함께 기적을 만들었다. 작은 인생을 경험 한 것이다. 도전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말이다.


그리 쉽지 않은 여정이었고, 중간에 이런저런 해프닝을 경험했지만 모두 무사하게 올라와서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하다. 산사랑 멤버들 평균연령이 꽤 높은 편이었는데, 모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중간중간 경험했던 나의 감정 변화, 나와의 싸움, 함께 한 분들의 따뜻한 배려, "어, 눈빛이 살아있네."라며 염려해 준 선생님, 정상에서의 놀라운 장관 등 하나하나 내 삶을 이어갈 귀한 자산이 되고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리산 도전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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