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질 일이 되어진 것일뿐!
땅도, 직장도, 집도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부여 땅을 만난 것도 숱한 발품의 결과라기보다,
어쩌면 우연히 얻어걸린 행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땅이 진짜 우리 땅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예전부터 귀촌을 마음에 품고 있던 우리는 일단 ‘땅을 먼저 사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KTX로 멀지 않은 곳 — 충주, 익산, 공주, 부여 — 을 후보로 두고
무작정 차를 몰아 지방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여정의 첫발이 우연히 향한 곳이 바로 부여였습니다.
부여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다만 ‘백제의 수도’라는 사실이 마음 한켠에 가벼운 호기심을 남겼습니다.
그 호기심이 실제로는 ‘끌림’이 되어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부여읍의 한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가 무심히 “땅 좀 보여주세요”라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건 소박했습니다.
작은 집 한 채, 텃밭을 가꿀 수 있는 300~500평 정도의 땅,
그리고 마을에서 살짝 떨어져 있으면서 서너 채의 이웃이 있는 그런 곳.
첫 번째 방문에서 세 곳의 땅을 둘러봤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부동산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건에 꼭 맞진 않지만, 한 번 보시겠어요?”
그가 소개한 곳은 무려 1,800평,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큰 땅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일단 가보기로 했습니다.
잡초가 무성하고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터였지만,
그 땅을 보는 순간 우리의 가슴 속에 무언가가 일었습니다.
그 위로 우리의 꿈이 하나둘씩 펼쳐지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설렘과 흥분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만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땅에는 폐가가 세 채나 있었고, 그 집들의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상속은 다섯 분의 자녀에게 넘어가 있었는데, 이분들은 국내외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폐가 철거에 동의해 주실지도 모르고, 연락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러 글을 찾아보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결국 마음을 접었습니다.
아쉽지만 ‘포기하는 편이 현명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땅은 우리 곁을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도 돌아보고, 네이버 지도로 이곳저곳 땅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땅이 자꾸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기묘하게도, 그 땅은 꿈으로 두 번이나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 꿈에서는 폐가 한 채가 온전한 집으로 변해 있었고,
그 앞마당에서 아홉 살쯤 된 소녀가 팔짝팔짝 뛰놀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소녀가 ‘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꿈은 조금 황당했지만 강렬했습니다.
그 땅에서 좀비 떼를 태워 물리치는 꿈이었습니다.
꿈들은 너무나 선명했고,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이건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결국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 땅, 우리가 사자!”
그 한마디로 마음이 정해졌습니다.
마음이 정해지자 일들이 놀라울 만큼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땅 매입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마치 누군가 길을 도와주는 듯한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회사 일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부여에 내려가 있는 동안엔
이상하리만치 일 관련 전화 한 통이 오지 않았습니다.
양가 어른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여의 땅은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부여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닙니다.
역사와 풍경이 준 첫인상, 땅과의 직감적인 연결,
꿈이 건넨 신호, 그리고 현실이 열어 준 작은 길들 —
이 모든 것이 겹쳐져 우리가 그곳에 발을 디디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우리 안의 중심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단지 가족만의 보금자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함께 밭을 일구고, 명상하며, 생각이 통하는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땅에서 나눔과 회복, 그리고 배움이 자라나길 간절히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