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

가장 가까운 타인

by 정은유


나에겐 곧 성년 되는 아들이 있다. 엄마로서 20년 가까이 살았다는 뜻이다.

오늘은 이 둘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아들이 지난 주말에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얘기 꺼냈을 땐 친구들과 가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카메라 생긴 기념으로 바다 사진 찍으러 가는 거라 일행 없이 혼자 간단다. 아무리 그래도 미성년인데 위험하지 않겠냐 하니, 날 또 극성 엄마로 취급했다. 전혀 무섭지도 심심하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면서 기어이 홀로 여행을 감행했다. 토요일 낮 기차로 가서 일요일이 다 끝나가는 시각에 돌아왔다. 한껏 상기된 표정을 하고서, 좋았다는 말을 제일 먼저 했다.


1.5일의 시간 동안 어미의 모든 신경은 자식을 향해 있었는데, 자식이란 놈(?)은 전화 한 통이 없었다. 평소에도 외출이 길면 내가 먼저 전화 걸어서 안부를 확인하는 편이었으니 이번이라고 다를 바 있었을까. 그나마 자주 확인하지 않아도 됐던 건 엄카 사용내역이 실시간으로 날아온 덕분이었다. 카드사 문자를 볼 때마다 님의 자식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먹었는지 보고 드립니다~ 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네 걱정뿐인데 너는 이거하고 저거 먹고 신났구나 아들!






어릴 적의 나는 생활통지표에 기록될 정도로 자주성이 높지 않았다. 하나하나 기억나지 않지만(애써 기억해 보면 협동심, 책임감, 자주성 등등였던 듯) 5개로 나누어진 성격 내지 인성 평가가 있었는데, 다른 건 다 ‘우수’인데 자주성만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이런 날 걱정했고, 나 역시 독립적이지 못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큰 딸로 자랐음에도 아니, 되레 그것 때문이었는지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선택해야 할 때 엄마에게 자주 물었던 기억이 있다. 성격이란 게 선천적이기도 하니까 우리 모녀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닐 수 있는데, 그 시절의 나의 자주성 부족은 큰 걱정거리였음이 분명하다.



어른이 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의 삶을 살면서 막연하게 의식을 지배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 라떼(?)보다 점점 치열해지는 세상 속에서 내 자식이 날 닮아 자주적이지 않으면 어쩌지. 특히 장남은 엄마를 많이 닮는다고 하니, 이런 것까지 나를 닮으면 안 되는데 하는 거였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육아가 필요한 초등학생 때 회사일이 제일 바빴다. 남편 역시 잦은 출장에 출퇴근이 일정한 편이 아니었다. 부모 모두 아이 옆에 있어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행히 외할머니의 극진한 케어로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생기지 않았으니 이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상황이었다. 자주성 같은 거 따지고 말 게 없이 육아는 생존 그 자체였다.


옆에서 자주 웃어주고 챙겨주지 못해서였을까. 사춘기 들어서면서 너무 변해버렸다. 그전까지는 내가 방에 혼자 있으면 품 안으로 달려들어 안아달라 하고, 놀자 하던 애가 말수가 줄어들면서 스킨십을 거부했다. 사춘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누구나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온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지금도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아들 방이 제대로 갖춰진 이후에 노크 안 하고 문 열었다가 된통 항의당했다. 습관 들여지기 전까지 여러 번 그랬는데 그때마다 성질을 냈다. 아들은 나와 철저히 거리 두기에 들어간 거였다. 한 마디 예고도 없이, 어미의 피 끓는 모성애를 외면하듯 그렇게.


변해버린 아들이 낯설고 서운한 어미는 보상심리가 발동해서 성장통 겪는 아들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말로만 격려할 뿐 속으로는 ‘네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어디서 반항이야, 돈 벌러 다니랴 살림하랴 육아하랴 내가 더 힘들거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깊은 깨달음일수록 뒤늦게 온다는 것.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 학교생활, 친구관계에 적응하지 못하여 담임 선생님에게 ‘자퇴’를 상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샘과의 전화 면담에서 들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인생 처음 느꼈지 싶다.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흘렀다. 할 수만 있다면 중학교 때로 되돌아가서 엄마 노릇 제대로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아들도 나도 사나운 계절을 그저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른인 내가 더 의연해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 건지, 아들의 질풍노도가 알아서 끝이 나서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고3 올라오면서 모자 관계가 서서히 편해졌다. 지금은 서로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임을 의심 없이 믿고 있다. 이리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하고 반성했는지는 나와 하나님만 알 거라 생각한다.






아들이 혼자서 멀리 여행 다녀온 직후라 지금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남겨두면 좋을 것 같았는데, 마침 걸맞은 글감을 만났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운영자님과 나 사이에 어떤 텔레파시가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하나뿐인 자식이 어미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나는 아직 아무 준비가 안되었는데, 좀 더 품 안에 끼고 있고 싶은데 어미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자꾸 혼자 뭘 하려고 한다. 자주성이 부족할까 걱정했던 건 그야말로 1도 쓸모없는 거였다. 이렇게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인데, 내가 너무 내 위주였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아들아, 네가 만날 세상은 지금 상상하는 것처럼 꿈과 환상의 나라이지만은 않다는 것. 그리하여 넘어지고 깨져, 피나고 상처 입는 일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순간이 와서 혼자 감당하기 힘들거든 ‘가장 가까운 타인’의 자세로 지켜보고 있을 엄마 아빠에게 달려와 달라는 것, 이것뿐이다.

사랑하는 ㅅㅈ야, 너의 눈부신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