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게
경진아, 안녕? ^^;
이 무슨 두서없이 막돼먹은 인사인지, 살면서 내가 널 이렇게 부르는 순간이 올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데 오늘 어떤 계기로 네 얘기를 하고 싶어졌어.
어쩌면 예견된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순간을 옴팡 즐겨보려고.
어떻게 지내, 가족들은 잘 계시지,
와이프와 아이들도 네 곁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무탈하리라 믿어.
나도 우리 엄마의 든든한 맏딸로, 두 동생들의 귀여운(?) 언니로,
어떤 남자의 와이프이자 세상 가장 소중한 내 아들의 엄마로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
너도 꼭 그러고 있길 바라.
그래야 나의 이 갑작스럽고 엉뚱한 편지가 그저 잔잔한 모멘트로 남을 것 같거든.
우리가 처음 만난 게 국민학교 5학년, 동네 교회에서였지.
동생이 먼저 다니고 있었고 주말마다 심심해하는 나에게 같이 다니자 해서 멋모르고 갔다가 동생은 얼마 못 가 그만두고, 나는 그날부터 지금껏 여전한 크리스천으로 살고 있지 뭐야.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교회에서 늘 보다 보니 금세 친해졌고, 어쩌다 서로에게 첫사랑이 되어서 그 인연이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잖아. 우리 참 질긴 사랑 했네.
그리고 난 지금도 아주 가끔씩, 연중행사쯤 될 정도로 네 생각을 해.
어디 사는지, 계속 전주에 있는지, 무슨 일 하는지, 하는 일은 잘 되는지 등등 뻔한 안부가 궁금하더라.
너도 내 생각날 때 있는지 문득 알고 싶네. 어떠냐. 내 생각 한 적 있냐.
그 시절의 우리에 대해 떠올려 볼까.
그저 순수했지 뭐. 많이 많이 좋아하면서 대놓고 표현 한번 못하고 편지만 열심히 주고받았잖아. 누가 뜯어볼까 봐 집으로 우편 보낼 수도 없으니 직접 줘야겠는데 그것 역시 부끄러워서 어디 어디서 만나자 해놓고는 던지듯이 건네고 뒤돌아서서 얼마나 빨리 걷고 싶던지ㅎㅎㅎ...
뭐 이렇게까지 유난 떨 일일까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땐 그냥 모든 게 서툴고 어려웠던 거 같아.
그래서 순수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10대.
고작 십몇 년밖에 안산 인생들이 어쩌자고 맨날 진지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로 누가 더 우울한가 내기하는 거 같았어.
그 시절 온갖 슬픈 노래들, 우리 주제가였잖아. 가사들은 왜 그리 주옥같냐고ㅋ...
나의 10대는 너라는 첫사랑이 있었던 덕분에 덜 아프고 많이 빛났음을 알아.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
너랑 정말 끝내고 한참 지난 어느 날 동생이 그러더라,
앞으로 언니(나) 인생에 경진오빠 같은 자상한 사람 없을 거라고. 그리고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지... ^^ㅜ
많이 불안하고 심하게 흔들렸기에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던 그 시절의 좋았던 기억들만 꺼내보고 싶은 것이, 그때와 이유는 다르지만 여전히 어려운 인생을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사는 건 아홉 번 실패이다가 한 번 정도 성공이 옜다 고생했다 하면서 못 이긴 척 와주는 난이도 상의 확률 게임이라는 걸 알아버린 찐중년의 나이, 우리 언제 이리 늙었다니.
살면서 만날 날 안 오더라도 앞으로도 네 생각 한 번씩 날 거 같아.
그럴 때면 망설임 없이 어린 날의 너와 나를 떠올리며 웃을 거야.
죽는 날까지 한때 누군가의 사랑이었던 추억의 공통분모 간직 하고서 각자의 삶을 잘 영위해 가자. 안녕, 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