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
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교회에서 수련회를 떠났다. 젊디 젊은 교사들과 사춘기를 갓 벗어난 고딩들이 함께 한 여름, 한낮의 태양보다 뜨겁고 강렬했던 그 시절이 여름방학을 주제로 추억 회상하던 중에 떠올랐다. 오랫동안 잊고 산 것일 뿐 사라진 건 아닌, 한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연대가 이 밤 사무치게 그립다.
집 떠나 낯선 곳에서 여럿이 밥 해 먹고 같이 자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일.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이들과 자연 속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움 충만이었을 시간. 방학이라 해서 놀거리가 풍성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수련회 이벤트는 그때의 우리들에게 8월의 크리스마스 그 자체였지 싶다. 오죽하면 2박 3일이 너무 짧게 느껴져 끝나고 난 뒤 우울감마저 들었을까.
대학생이거나 직장인이었던 젊은 선생님들은 10대들에게 연예인 못지않은 우상이었다. 선생님 뒤만 따라다녀도 재밌고 설렜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도 어린 나이였는데^^; 미성년이 보기엔 그저 갓생. 나도 어른 되면 교회 선생님 해야지 했는데 서울로 이사 오고 교회를 안 가게 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다.
산과 나무, 물이 있고 수십 명이 머물기에 적당한데 북적거리지 않는 곳을 어쩜 그리 잘 찾는지 쌤들의 능력은 여기서도 티가 난다. 도착해서 짐 풀자마자 짓궂은 오빠들 여럿이 여자애들을 한 명씩 들어서(?) 물에 빠트리는 걸로 물놀이가 시작된다. 유치하게 몇 번째로 빠지는지를 가지고 인기순위를 매긴다. 즉, 초반에 빠져야 폼 나는 상황. 근데 나는 진심으로 물이 무섭다. 어차피 빠트릴 거면 그냥 빨리 데려가라 싶다가도 수영도 못하는데 무슨 일 나면 어쩌나 싶어 도망치고 싶기도 해서 이중적 마음이 들었다. 강가 입구에 던지듯이 세게 빠트리는 통에 입수 즉시 물을 얼마를 먹는지, 어떤 날은 하도 많이 먹어서 울렁거렸던 일도 있다.
수련회 하이라이트는 아묻따 캠프파이어지. 뜨거운 여름밤, 타오르는 불 앞에 수십의 청춘들이 큰 원으로 앉았다. 노래를 하고 기도를 올리며 밤 예배 식순을 이어간다. 그리고 이어진 게임시간, 모두가 기다린 수건 돌리기ㅋㅋㅋ... 스릴 넘치다 못해 이처럼 인류애 돋는 오락이 또 있을까. 수건 돌리기가 있는 캠프파이어라니, 끝내주는 이 낭만을 요즘 세대가 알랑가 싶다. ^^
추억은 힘이 세다고 누군가 그랬지. 덥기만 하고 재미없을 여름방학을 기다리게 만든 교회 수련회의 추억으로 몽글몽글해진 이 밤, 밤새 뒤척여도 좋으니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