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벌써 9년이 된 아들과의 첫 해외여행, 행선지는 도쿄, 길치가 무슨 자유여행이냐 싶어 패키지를 예약했었다.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 비행기를 탄다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나도 일본은 가본 적이 없어서 출발 앞두고 엄청 기대했던 것 같다. 다행히 기대만큼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첫날, 일정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중에 가이드가 편의점을 꼭 한번 가보라고 했다. 짐 풀자마자 호텔 근처 편의점 습격, 우리나라보다 훨씬 화려하고 풍성한 진열대 앞에서 두 모자가 마냥 신났었지. 이것저것 사 와서 호기심에 한 번씩 다 맛보고 한국의 맛이랑 비교도 하고, 여행객 아니랄까 봐 낯선 나라 체험에 바쁜 첫 날밤을 보냈다.
그때가 학기말 방학 시즌이라 그랬는지 나처럼 엄마-아들, 엄마-딸끼리 온 커플이 몇 있어서 금세 편한 관계가 되었다. 여행지에서 한밤을 같이 보낸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친해진 느낌에 다음 날 아침,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의점 간식 이야기로 하루를 열었다. 그렇지, 여행의 최고 미덕은 식도락이지.
고등학생 딸과 함께 온 엄마가 가방에서 뭘 꺼내더니 한 조각씩 나눠주었다.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롤케이크였다. 편의점 추천 간식이라 해서 사봤는데 역시나였다며 우리 주려고 챙겼다고 했다. 입안에 넣고 혀끝으로 음미하려는 찰나, 분명히 내 입에 있었는데 없다. 뭐지? 분명 달콤하고 부드러운 게 느껴졌는데 이내 녹아버리네? 살면서 달보드레를 경험한 첫 순간이었지 싶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그 맛이 자꾸 생각났다. 여행 내내 좋았던 기억밖에 없어서 더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로켓 배송해 주는 쇼핑몰 검색창에 ‘일본 롤케이크’라고 쳤더니 몇 개가 나왔던 것 같고 그중에서 끌리는 것으로 주문했다. 다음 날 새벽 집 앞에 와있었던 도지마롤, 일단 생긴 건 똑같아 보이니 합격, 떨리는 마음으로 한 조각 물었다. 으음, 순도 100의 같은 맛이라 하긴 어려웠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은 비슷한 것이 그날 그 장소의 달보드레했던 기억을 소환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흘러도 어떤 맛은 희미해지지 않고 가슴에 남는다. 혀가 기억하고 있는 달콤함 때문만은 아닐 게다. 그때 내가 느낀 맛에 대해 품었던 감정 어딘가에 여행지의 공기, 낯선 이들과의 훈훈한 대화, 아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스며있어서였다. 내게 달보드레한 기억이란 그래서 이 모두를 품고서 얌전히 저장돼 있는 한 장의 스틸 사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