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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Aug 06. 2020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와 시간, 플롯

Flims by Christopher Nolan

시와 회화는 예술의 두 분류로 각각 언어예술과 시각예술을 대표한다. 이 둘은 예술을 정의하고 미학을 성립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고자 긴 역사의 흐름을 거쳐 대표적인 두 분류로 자리 잡았다. 이 두 부류가 지닌 속성을 정의함으로써, 예술이 어떤 의미로 성립하는지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예술로 하여금 모든 가능성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과가 새롭고 독특하다면 무엇이나 빌어오고 어디서나 끌어오는 시대이다. 더 이상 회화는 회화에 적합한 형식으로 한정돼야 한다거나 문학에서 빌어온 것들을 기피해야 한다는 시대가 아니지만, 두 분류가 가진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미학적 접근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지금도 통속 되는 대표적인 속성이 있다면 회화는 공간적인 것이고 개별적 재현이며, 시는 시간적이고 연속적인 재현이라는 것이다. 언어예술은 기호와 상징의 연속이 시간적인 재현을 펼친다. 이것이 곧 하나의 이야기로 작동하는데, 플롯이란 이 이야기를 인과에 따라 구별되는 여러 부분으로 나눠 구성도를 펼치는 것이다.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시간의 방향성이 일방향인 것을 따라 자연스럽게 1(인)-2(과)-3(인)-4(과)식으로 풀어지지만, 플롯이 발전하면서 인과가 도치되거나 비선형적 구성을 이루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결국 플롯은 시간을 활공하거나 중첩한다.


 

영화의 미학은 지각적인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영화가 갖고 있는 시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분히 언어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플롯이라는 이야기의 형식 또한 가진다. 영화가 갖는 시간적인 특성이 무언가를 발휘하기 위해선 플롯이라는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다. 단순히 시간을 리와인드하는 것만으론 어떤 관념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플롯의 구성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더 흥미진진해지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시간의 도치를 통해 인과를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장 기본적인 기법 중 하나인 플래시백은, 현재에 과거를 심는 것이다. 과거의 인을 불러와 현재의 과를 설명하는 것으로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시민 케인’에서부터 지금까지 수 없이 활용돼 오고 있다. 다른 예로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비선형적 구조를 들 수도 있다. 여러 주인공이 각각의 시간을 보내는데 이 중첩된 시간 속에 인과가 서로 엮이며 하나의 시간으로 수렴하는 방식이다.


 

시간의 도치를 활용하는 영화를 다루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를 빼놓을 수 없다. 두 개의 타임라인으로 구성된 영화는, 컬러는 현재로부터 시간의 역순, 흑백은 시간순으로 흐르는 것을 번갈아가 보여주고 중간지점에서 결합한다. 11-1-10-2-9-3-8-4-7-5-6 식으로 진행되는 플롯은 과가 인이 되고 인이 과가 되는, 과로부터 인을 쫓는 과정을 보여주고 관객들이 스스로 플롯을 탐구함으로써 이야기를 짜 맞추게 만든다.


 

단지 ‘메멘토’에서 그쳤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저 플롯의 대가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를 통해 영화 속에서 시간을 어떻게 활공할 것인가 다시 고민한다. 대부분 영화에서 관객은 시간을 쉽게 쫓을 수 있다. 주인공의 시선과 시선 밖이 모두 주인공의 시간을 위주로 흐르기 때문에, 주인공을 쫓는 관객은 자연스레 극의 시간을 체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관객은 시간을 느끼는 게 아닌 쫓게 된다. 아무리 시간을 도치시킨다 한들, 시간이라는 관념이 영화에서 어떤 관념도 차지하지 않는다. ‘덩케르크’는 주인공이 아닌 전쟁에 던져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담는다. 그래서 뚜렷하게 쫓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일분일초를 느낄 뿐이다.


 

영화에서 시간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시간 그 자체를 관념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느끼게 하는 것뿐이다. 이럴 경우, 플롯을 통한 시간의 도치가 시간을 일종의 이야기를 위한 장치로 그치는 것과 다르게 영화적 체험으로 이어진다. 결국 플롯으로 부리는 마술이 얼마나 현란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각적 경험으로 이어지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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