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디렉터 김유경이 바라보는 세상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올해 대한민국을 강타한 노래 한 곡을 꼽자면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트로트를 빼놓을 수 없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트로트를 이렇게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어느 장소를 가도 들리기 시작했다. 영탁의 개인적인 이별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사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슬프지만, 트로트 특유의 유쾌한 4/4박자 정통 트로트 리듬과 호소력이 짙은 창법,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스텝 그리고 꽤나 훤칠하고 귀여운 인상을 지닌 젊은 남성이 불렀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국 트로트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마케터의 시각으로 식음료 브랜드의 콘텐츠를 제작해오고 있다. 식품은 어느 상품보다도 일상과 밀접하고, 소비가 빠르며,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와 같은 SNS 채널을 통해 피드백을 즉시 들을 수 있는 상품이라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0년 식음료 업계에도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바람이 불었다. 줄서는 미슐랭 맛집 ‘금돼지식당’은 의류 브랜드 ‘TBJ’와 콜라보해 금돼지식당의 깜찍한 돼지 캐릭터가 그려져있는 티셔츠, 볼캡, 앞치마, 에코백을 만들었는데 출시하자마자 완판됐다. 밀가루 회사인 대한제분과 맥주 브랜드 세븐브로이가 손잡고 선보인 ‘곰표 밀맥주’ 는 출시 일주일만에 30만개가 완판되었고, 약 3만명에 이르는 팬클럽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네이버 인기 웹툰 ‘호랑이 형님’과 ‘플래티넘 맥주’가 손잡고 업계 최초로 웹툰 콜라보 수제 맥주 ‘무케의 순한 IPA’ 를 출시하며 CU 편의점이 꼽는 올해의 히트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TBJ 옷에서 왠 금돼지식당?, 맥주에 왠 곰표 밀가루? 라고 생각하겠지만 ‘왜’ 라는 의문사가 호기심으로 변한 것이다. 그 외에 동원 F&B와 팔도가 만든 참치 캔 모양의 ‘동원 참치라면’, ‘매일우유 소프트콘’ ‘강릉 초당 순두부 아이스크림’, ‘옥수수깡’, ‘크런키 꼬깔콘 옥수수맛’ 등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상품이 출시되면서 콜라보레이션은 식음료 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이 되었다. 그래서 이종이든 동종이든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들끼리 만나면 ‘조만간 저희 콜라보 한번 해요~’ 라는 말이 ‘조만간 커피 한 잔해요~’ 라는 말처럼 인사치레가 되기도 했다.
콜라보레이션 (Collaboration). 그 단어의 기원은 라틴어에서 찾을 수 있다. 함께라는 뜻의 Col 과 일하다라는 뜻의 Labor가 만나 ‘함께 일하다, 협업하다, 협력하다’라는 뜻이 되었다. 콜라보레이션의 시작은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과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메디치는 이탈리아의 정치가이자, 15세기 무렵 르네상스를 꽃피운 많은 예술 천재들을 후원한 스폰서였고, 스포르차 가문은 르네상스 시대에 밀라노를 거점으로 지배 세력을 펼치던 이탈리아의 귀족이다. 두 가문은 피렌체와 밀라노를 중심으로 예술, 시인, 화가, 외교, 학자 등을 막대하게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학자들의 협업을 도모하면서 콜라보레이션의 개념이 탄생했다. 콜라보레이션이 상업적인 분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미국의 팝아트 화가 앤디 워홀이 뉴욕에서 상업 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면서 부터다. 빨간색이 아닌 녹색 코카콜라 병과 캠벨 수프 캔 등을 소재로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대중적인 상품을 아트로 승화시키며 아트가 상업분야로 넘어오는 이종 콜라보레이션의 한 획을 그었다.
콜라보레이션의 종류는 크게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브랜드와 아티스트, 브랜드와 캐릭터, 브랜드와 브랜드, 그리고 브랜드와 캠페인이다. <월간 윤종신>은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이 만든 앨범이자 브랜드로, 매 해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와 콜라보레이션하여 완전히 다른 느낌의 앨범 표지가 그려져있는 앨범을 출시한다.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의류 브랜드 스파오의 옷에 그려져있는 펭수. 브랜드와 캐릭터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베스킨라빈스에서 판매하는 바나나킥 아이스크림. 브랜드와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이다. 오뚜기는 '오뚜기 라면을 먹는 순간만큼은 국민 모두가 코로나로 인한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라는 한 학생의 편지를 받고, 컵라면 용기에 '코로나 극복 가즈아!'라는 응원 메시지를 인쇄해 판매했다. 코로나 블루에 빠진 국민들에게 작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브랜드와 캠페인 콜라보레이션이다.
콜라보레이션은 어떠다보니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글은 잘 쓰지만, 그림을 못 그린다. 그래서 그림을 잘 그리는 아티스트를 찾아가 내 책에 삽화를 그려달라고 제안한다. 콜라보레이션이다.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원초적인 이유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서다. 갖지 못한 것은 재능일 수도 있고, 브랜드 이미지일 수도 있고, 접점이 없는 고객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곰표 맥주의 경우, 평생 밀가루만 제분해오던 대한제분은 ‘뽀얗고, 깨끗하고, 포근한’ 브랜드 이미지와 밀가루가 필요한 고객들이 유일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븐 브로이와 손잡기 시작하면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맥주 상품을 출시하게 되었고, 맥주 애호가들에게 ‘곰표’라는 브랜드를 각인 시키면서 새로운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맥주라는 상품과 맥주 애호가라는 새로운 고객층을 얻었다. 특히 같은 식품이긴 하지만 동종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콜라보레이션의 두번째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누릴 수 있는 마케팅 방안이기 때문이다. 만약 금돼지식당에서 자사 공장을 세워 앞치마와 볼캡을 만들겠다라고 다짐했다면, 공장 부지와 설비를 매입하고, 의류 브랜드에 경력이 많은 팀장급 인력을 채용했어야 한다. 하지만 TBJ 라는 의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서 공장을 세우거나 인력을 채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떤 구조로 금돼지식당과 TBJ 가 수익 배분을 계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금돼지식당은 브랜드 이미지와 깜찍한 돼지 얼굴 캐릭터로 오히려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
콜라보레이션의 세번째 이유는 한정판매의 매력 때문이다. 콜라보레이션은 영구적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판매 기간을 한정하거나 수량을 한정해 ‘지금 아니면 안된다는’ 이유로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해 단기적인 매출을 발생시킨다. 이는 경제학자 켈빈 랭카스터 (Kelvin Lancaster)가 1971년에 내놓은 ‘특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소비자는 특정 브랜드나 상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기능이나 가격과 같은 주요 구매 요인 뿐만 아니라 그 브랜드와 상품이 갖는 이미지나 희소성과 같은 특별한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구찌 고유의 디자인을 녹인 피아트 500 구찌 에디션, 에르메네질도 제냐 스타일의 마세라티 스페셜 에디션, 베르사체 디자인을 녹인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등 특별한 한정판들은 소유하고 싶은 소비자 심리를 자극한다.
하지만 모든 콜라보레이션이 능사는 아니다. 콜라보레이션을 하려면 자사 브랜드에 대한 브랜딩이 확고해야하고, 다른 브랜드와 섞여도 변하지 않는 브랜드 키워드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브랜딩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타사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가 흐려지고, 색깔없는 멋없는 브랜드로 남게 될 것이다. ‘결이 맞는’ 브랜드를 찾아 함께 했을 때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은 비로소 그 색깔을 드러내 브랜드 이미지를 고양시킬 수 있는 전략적인 마케팅 전술로 기억될 것이다.
글 |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이메일 | angelakim@tasty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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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컬럼은 현대중공업컬럼 매거진 H에 기고하였던 글을 재편집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