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냉동식품 전성시대

푸드디렉터 김유경이 바라보는 세상

by 푸드디렉터 김유경

냉동식품 전성시대

SE-bc3f0020-8408-4090-8e15-8a5ecb6669c1.jpg 집에서도 멘보샤와 맛집 수제 만두를 ⓒ 테이스티코리아

최근에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수많은 전자제품 전문점을 찾았다. TV, 에어컨, 전자레인지, 밥솥, 에어프라이어는 너무 쉽게 결정을 했는데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었던 것은 바로 ‘냉장고’다. 외부에서 노크를 똑똑하면 안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감응형 냉장고부터 검색을 하면 식재료의 종류와 유통기한을 확인해주는 스마트 냉장고까지 참으로 다양한 기능을 갖춘 냉장고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의 고민거리는 단순했다. ‘350L 이상의 대용량 냉동고’가 있는 냉장고를 살 것인가, 아니면 ‘영하로 온도 변경을 할 수 있는 김치 냉장고를 따로 구입할 것인가’였다. 그 이유는 냉동식품때문. 과거에는 냉동실에 마른 멸치, 고추가루, 명절에 먹다 남은 생선,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만 보관해두었지만, 이제는 냉동 볶음밥, 냉동 만두, 냉면 맛집의 냉면 육수, 해쉬브라운과 팬케이크 등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에 즉시 조리할 수 있는 간편식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 과거에는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던 냉동식품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냉동고에서 꺼내먹는 콜리플라워, 완두콩, 감자

2017년 오프라 윈프리의 콜리플라워 냉동피자가 출시되면서 냉동식품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누명을 벋기 시작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크래프트하인즈 (Kraft Heinz)와 손을 잡고 ‘밀타임 스토리스 (Mealtime Stories, LLC)’ 를 설립했는데, 냉장수프 4종, 매쉬드 포테이토, 파스타, 피자들을 출시했다. 그 중 콜리플라워 냉동피자는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파격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피자 본래의 맛과 향은 그대로 유지하고, 크러스트 반죽의 3분의 1을 몸에 좋은 콜리플라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 후, 냉동 콜리플라워, 냉동 완두콩, 냉동 감자 등등 ‘냉동 채소’ 의 공급과 수요는 함께 증가하기 시작했고, 에스닉 푸드 (Ethnic Food) 가 건강식의 이미지로 자리 잡으면서 태국, 베트남,한국,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요리가 냉동식품으로 제조되어 판매되고 있다. 이때부터 ‘비건’ ‘글루텐 프리’ 등 다양한 식단의 소비자들이 냉동 식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건강’ ‘안전성’ ‘간편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엄 세대들로 인해 냉동식품은 미국 유통 시장의 트렌드가 되었다.


‘해동 후 재냉동시키지 마시오’

국제냉동협회가 권고하는 냉동식품의 바람직한 저장온도는 영하 18℃다. 어중간한 숫자처럼 보이지만 영하 18℃는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화씨 0 ℉에 해당한다. 얼음은 0℃ 이하에서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얼음이 생기기 쉬운 온도는 따로 있다. 바로 영하 1℃에서부터 영하 7℃. 이를 ‘최대 얼음 결정 생성대’라고 표현하는데, 이 온도가 되면 냉동식품 내부에 있는 수분의 대부분이 동결되어 부피가 팽창하고, 세포가 내부에서 파괴된다. 냉동식품 내의 세포가 파괴되면 맛은 물론 영양분도 파괴된다. 그래서 이 구간을 뛰어넘어 급속 냉동을 시키고, 문을 열고 닫아도 냉기를 빠르게 유지시켜줄 수 있는 메탈 쿨링 시스템을 갖춘 고급 냉동고가 인기다. 조리를 한다고 냉동식품을 꺼내놓고, 물이 흐르게 내버려두면 좋은 냉동고를 사둔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버린다. 냉동식품의 뒷면을 살펴보면 ‘해동 후 재냉동시키지 마시오’라는 안내문구가 적혀져있는 것이고, 냉동식품은 냉동고에서 꺼낸 즉시 먹을만큼한 그릇에 담아두어야 한다.


대용량 냉동고는 뜨는 별, 주방세제는 지는 별

재미있는 통계 하나를 발견했다. 가정간편식식장이 확대되면서 350L 이상의 대용량 냉동고를 갖춘 고급 냉장고의 매출은 증가하고, 수세미나 고무장갑, 주방세제 매출은 감소하고 있다는 것. 국내 L 마트에 따르면 주방 세제 매출은 작년대비 10% 내외로 감소했는데, 가정 간편식이 보편화되고, 외식 빈도수가 늘어나고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먹으면서 집에서 조리도구나 그릇을 씻을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가정용 냉동고 매출은 늘어났다. 냉동 야채, 냉동 만두, 냉동 볶음밥은 물론 홈베이킹용 냉동생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냉동실에 보관해야할 식품들이 많아졌기 때문. 특히 온라인 식품 배송 시장과 포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냉동식품의 경우 마트의 매대에서 사오는 것보다 온라인 채널을 통해 사는 것이 보편화되어 상당히 많은 음식들이 장바구니가 아닌 택배 상자에서 냉동실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에 SPC 삼립은 이커머스 쿠팡과 협업해 홈델리 브랜드 ‘얌 (YAAM!)’ 을 출시했는데, 베이커리, 샐러드, 육가공 제품은 물론 국, 찌개 등의 한식류 간편식 (HMR) 등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홈 델리’ 스타일의 간편식 브랜드를 키워나가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일반 냉장고와 냉동고로 변환가능한 스탠드형 김치냉장고를 세컨 냉장고로 구입했다. 일반 냉장고에는 냄새를 차단하는 밀폐용기에 담아둔 반찬들과 신선한 야채, 과일, 우유, 물, 맥주 등을 보관하고 있고, 김치 냉장고는 냉동 만두, 냉동 볶음밥, 냉동 치즈스틱, 냉면 육수, 아이스크림 등으로 가득 차있다. 말이 김치냉장고지 편하게 요리해먹고 살고 싶은 나의 욕망이 담겨있는 ‘욕망 냉장고’다.


글 |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이메일 | angelakim@tastykorea.kr

https://in.naver.com/foodie_angela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왜 콜라보레이션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