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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Jun 03.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취리히

영어, 평온

2015년 10월 11일


베른 구 시가지


영어- 카우치서핑

                       

나는 약속시간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어느 층인지 몰라서 모든 집의 종을 다 눌러서 확인했다. 다행히 호스트 클라우디아가 나를 즐겁게 맞아주었다.

클라우디아와 그녀의 친구들은 나를 위해 퐁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즐겁게 맞이해 주었다.

저녁을 먹었지만 퐁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57'                                               


숙박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숙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면에서 카우치서핑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비용도 들지 않을뿐더러 현지인의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직접 눈 앞에서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카우치서핑을 꺼려지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들이 존재한다. 우선 카우치 서핑은 단순히 인터넷 상에서 신청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정보력과 신뢰성이 떨어진다. 이 경우에는 호스트의 프로필 정보와 레퍼런스를 꼼꼼히 읽으며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좋은 레퍼런스가 많을수록 안전에 대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안전성에 대한 문제도 크지만 나에겐 의사소통에 대한 문제가 카우치서핑 도전을 기피하게 하는 요인으로 더 크게 작용했다. 외국에 나가면 당연히 외국어를 해야 하지만 여행 목적으로 온 경우 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고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영어라도 할 줄 알면 다행이지만 영어로 말하는 것조차 쉬운 게 아니었다. 학교 공부와 입시를 위해 15년 이상을 영어 공부를 해왔지만 여행 초반에 내가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국의 정규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행했더라면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듣고 읽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 문제는 영어로 말할 줄 모른다는 것에 있다. 현재 수능과 공인 영어인증시험은 듣기, 읽기 위주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영어가 아닌 시험을 위한 영어만을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쓰기와 말하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 조차도 문제를 풀기 위해 답이 정해진 영어다. 내가 유럽여행을 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 듣고 읽을 줄 알더라도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의 생각을 영어로 옮길 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문장을 만들어서 예행연습을 한 후 말로 옮기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또한 영어권 국가에서 여행을 시작했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말하는 표현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하는 연습도 같이 병행했다. 이렇게 차츰차츰 영어 말하기를 시도하다 보니 어느샌가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카우치서핑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호스트가 취리히에서 만난 클라우디아다.


벨라뷰 광장의 분수대
이른 저녁의 반호프 거리


첫 카우치서핑이라 그런지 첫 만남은 많이 낯설었다. 그래도 그녀는 나를 위해 스위스 전통 음식인 퐁듀를 만들어 주었고 그녀의 친절함 덕분에 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지만 클라우디와 그녀의 친구들은 내 영어 실력에 대해 전혀 내색하지 않았고 나도 어설픈 영어로 천천히 말을 떼었다. 클라우디아와 친구들은 서로 학교는 다르지만 주말마다 모여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친구 노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에게 스위스의 언어 분포와 언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나도 한국의 남북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다음날 나는 클라우디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한인 마트에 가서 라면을 구입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요리가 많이 없었고 한인 마트 직원이 라면을 추천해 주었기 때문에 라면을 구입한 것이다. 오랜만에 끓인 라면이어서 그런지 물 조절을 잘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라면은 클라우디아의 입맛에 맞게 되었다. 보통의 라면보다 국물이 묽어져서 그런지 매운맛이 덜 느껴졌다. 그녀는 한 입 먹어보더니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녀는 먹을만하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라면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카우치서핑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것들을 계속 도전하고 있었다. 카우치서핑은 단순한 무료 숙박 이상의 의미가 있다.


클라우디아의 집 앞 놀이터



2015년 10월 12일


린덴호프에서 보이는 취리히의 전경


평온- 취리히 호수

                                                                                                                                                     

마트를 나와 남은 시간 동안 호수를 보기로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호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측의 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두 쪽에 분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호수에서 솟아나오고 있어서 어떻게 물이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바르셀로나의 부둣가처럼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었지만 이 곳의 배들은 작고 미적 효과가 아닌 어업을 위한 배들이어서 아름다운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분수가 나오고 있었다. 호수 가운데에다 기계를 설치했는지 거기를 통해 물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58'                                                


스위스에 도시라는 단어는 많이 어색하다. 


취리히는 스위스 내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느 도시들이 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취리히는 취리히 호수로부터 시작되는 리마트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취리히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리마트 강 주변으로 녹지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산맥이 보이기 때문에 도시는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도심의 끝자락에 위치한 취리히 호수 덕분에 도시의 분위기는 한층 더 평화롭게 느껴진다.


프라우뮌스터
리마트 강변을 따라


아득하게 펼쳐진 호수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취리히의 건물들과 한적하게 떠다니는 배들. 호수 근처 부둣가에 자리를 잡고 호수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어지러웠던 나의 생각들이 하나하나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취리히 호수는 취리히의 모든 것들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도시와 함께 존재한다. 


호수가 주는 느낌은 강이나 바다와는 다르다. 강이 흐름, 바다가 넓음을 말해 준다면 호수는 조용한 평화를 가져다준다. 강과 바다는 모두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호수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호수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혼자서 가만히 존재한다. 강과 바다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을까, 나는 호수가 가지고 있는 잔잔함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취리히 호수의 평온함은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호수는 바라만 보아도 좋다.


취리히 호수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김동명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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