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운전
2018년 5월 27일
2시간 여를 한국말을 하면서 떠들고 나니 어느샌가 교회 청년들과 많은 정이 들었다. 그들도 이렇게 오랫동안 청년모임에 참여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이 없다고 했다. 7시쯤 되니 이제 모두들 갈 시간이 되었다. 교회 청년들과 한국말로 떠들고 나서 인지 헤어지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한국말이 많이 그리웠나 보다...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내면 깊숙이 있는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다. 우리는 외롭기 때문에 인간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연인, 친구, 가족, 공동체를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나는 주일성수를 위해 밴쿠버섬에 도착한 날 바로 한인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주일 예배가 끝나고 나는 목사님의 인도로 청년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마침 내가 도착했던 주일은 청년부 내에서 체육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체육활동은 교회 내부의 조그마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는데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나도 청년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게임을 하게 되었다. 체육활동으로는 탁구 경기가 이루어졌다. 경기는 일반적인 탁구채가 아닌 철판, 달력, 책, 주걱 등을 활용해 공을 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운동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교회 청년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청년모임이 끝나고 2차 모임을 위해 빅토리아 외곽의 팀 홀튼 매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청년들을 따라 10명 정도의 소규모로 이루어진 2차 모임에도 참여했다. 모임 가운데 청년들 중 대부분이 유학과 워홀 목적으로 캐나다를 방문했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청년들과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지난 밴쿠버에서의 여행을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국말로 떠들다 보니 어느샌가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나야 했지만 다시 혼자가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내의 호스텔에 짐을 풀고 나는 근처 이너하버로 나왔다. 이곳은 빅토리아 시내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항구였다. 내가 갔을 때 즈음엔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빅토리아의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노을을 바라보다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눈물이 쏟아졌다. 혼자 있는 것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만큼은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 「데생」 - 김광균 中에서 >
2018년 5월 28일
빅토리아 시내에서 캐나다 고속도로로 나가야 되는데 입구를 못 찾아서 30분간 시내에서 헤맸다. 빅토리아가 밴쿠버만큼 대도시는 아니어서 운전하는데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처럼 따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통과하도록 만들어놔서 고속도로 마크를 보고 고속도로인지 알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나서도 속도제한이 시속 60, 90 정도였고 2차선이라서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안전운전을 할 수 있었다.
유럽과 달리 북미는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 체계가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차나 버스와 같은 교통수단을 찾기가 힘들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밴쿠버섬에 오면서 나는 도시 간 이동하는 버스 시간, 비용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내가 찾은 해결책은 렌터카 운전이었다. 하지만 걱정도 많이 됐다. 렌터카를 빌리는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과연 캐나다에서 운전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뿐이었다.
나는 렌터카를 빌리기 위해 렌터가 매장에 찾아갔다. 나는 국제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렌터카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렌터카를 받은 후에는 차의 상태를 확인했다. 차는 흰색 도요타 코롤라였다. 차 외부의 찌그러짐, 스크래치 등을 확인받고 본격적으로 차 내부를 살펴봤다. 운전석, 변속기어, 윈드실드, 사이드미러, 전조등 모든 것을 확인했다. 본격적으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시동을 걸어봤다. 나는 이 순간까지도 운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긴장이 됐다.
캐나다의 고속도로는 대부분 왕복 2차선 도로였다. 다행히 속도제한이 높지 않아서 모든 차가 서행을 했다. 덕분에 나도 적정속도로 안전운전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STOP 표시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법규가 없었기 때문에 교통 체계 적응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따로 구입하지 않았고 그 대신 핸드폰의 구글 지도를 확인하면서 운전을 했다. 다행히도 길이 단순해서 목적지까지 경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밴쿠버섬의 내륙으로 진입할수록 도로는 더 좁아지고 구불구불해졌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 동시에 무료함을 쫓기 위해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했다. 운전은 밴쿠버섬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토피노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2시간의 휴식을 포함해 8시간가량을 운전한 끝에 나는 목적지인 토피노에 도착하게 되었다. 마지막 관문인 주차까지 마무리하고 나서야 나는 모든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첫 해외 운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