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만나는 로마

독일 소도시 여행 - 트리어

by 유상현

로마인의 발이 닿은 곳은 매우 넓다. 로마인의 유적이 남은 곳도 이탈리아와 지중해를 벗어나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독일에도 로마의 도시가 여럿 발굴되었는데, 그 중 단연 첫손에 꼽을 수 있는 도시는 트리어(Trier)다.


트리어는 알프스 이북에서 로마 최대의 도시 중 하나였으며, 그에 걸맞은 '로마 유적 종합세트'가 남아있다. 독일에서 만나는 로마, 트리어의 매력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포르타 니그라

시커먼 육중한 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트리어 역사지구가 시작된다. 도시의 북쪽 관문에 해당하는 이곳, 그 이름도 '검은 문'이라는 뜻의 포르타 니그라(Porta Nigra)인데, 서기 170년경 로마제국의 작품이다. 당시 도시를 감싼 육중한 성문 중 오늘날까지 남은 유일한 유적. 지금 보아도 상당한 규모에 견고함까지 느낄 수 있으며, 바깥으로 돌출된 심미성까지 모두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좌: 포르타 니그라 바깥쪽 | 우: 포르타 니그라 안쪽


Scene 2. 카이저테르멘

목욕은 고대 로마인에게 매우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로마 황제의 명으로 공중목욕탕을 크게 지었고, 그래서 '황제의 목욕탕'이라는 뜻으로 카이저테르멘(Kaiserthermen)이라 부른다. 온수를 끊임없이 공급하기 위한 지하 난방 시설 등 당시 기술과 공학의 결정체를 유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최대 19m 높이에 달하는 측벽을 복원 및 보강하여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좌,우 : 카이저테르멘


Scene 3. 원형극장

목욕탕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인에게 매우 중요한 콘텐츠가 원형극장(Amphitheater)에서 열리는 쇼였다. 거대한 원형극장에 수만명이 모인 가운데 검투사의 시합이나 동물 쇼 등이 열리곤 했는데, 이런 대규모 이벤트가 열린 도시는 로마제국에서도 인구가 많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트리어가 그 중 하나로, 알프스 이북의 원형극장으로는 단연 첫손에 꼽는 커다란 유적을 오늘날에도 확인할 수 있다.

원형극장


Scene 4. 뢰머 다리

트리어는 모젤강(Mosel)이 평온하게 관통한다. 트리어 역사지구 부근에서 모젤강을 건너는 다리를 '로마의 다리'라는 뜻으로 뢰머 다리(Römerbrücke)라 부르는데, 이 자리엔 기원전부터 다리가 놓였고, 지금의 석축 교각은 서기 15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무려 1900년 전의 교각이 지금도 튼튼하게 유지되며 다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니 로마의 기술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좌: 뢰머 다리 | 우: 다리 위에서 보이는 모젤강


Scene 5. 트리어 대성당

트리어는 로마 멸망 후에도 신성로마제국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로 남았다. 제국에 단 셋뿐인 대주교 중 한 명이 트리어에 기반을 두었고, 자연스럽게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은 강력한 권력을 떨쳤다. 그런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대성당 외부를 자세히 보면, 저층부는 벽돌의 색이나 모양이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고대 로마의 성벽 잔해를 활용하여 대성당을 지었기 때문. 중세 트리어 권력의 상징인 대성당에서도 로마 제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좌,우 : 트리어 대성당

이 외에도 트리어에는 로마 제국의 유적이 즐비하다. 특히 카이저테르멘 외에도 두 곳의 목욕탕 유적이 추가로 발굴되어 당시 도시의 인구 규모를 짐작케 한다. 트리어의 박물관은 이탈리아의 여느 도시 못지않은 로마 유물과 보물의 콜렉션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러한 트리어의 로마 유적은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 후에도 유적이 추가로 발굴되었는데 이미 세계유산 등록 후였기 때문에 추가로 발굴된 유적은 문화유산에 속하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로 클래스가 다른, 독일에서 만나는 로마. 트리어에 있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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