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같은 사람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

- 작가 : 외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 제작시기 : 1830년

- 전시장소 :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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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세상을 바꿀 재간은 없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 그 힘은 총칼로도 막지 못할 만큼 강력해진다. 누가 동원해서 모일 수 있는 숫자의 스케일로는 안 된다.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가 위협받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선 사람들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아지면, 그때는 제 아무리 강력한 권력과 무기가 있어도 이를 막을 수 없다.


오래 전 인상깊게 보았던 웹툰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하나쯤은 나온다.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인간이." 그 미약한 '하나'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면 그 틈으로 무수한 '우리'가 쏟아져나올 길이 열린다. 그래서 처음 찌르고 나오는 그 한 방이 중요하다. 민중 혁명의 영원한 아이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바로 그 알레고리 아닐까.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1830년 파리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을 목격하였다. 부패한 왕정의 반민주적인 만행을 참을 수 없어 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3일만에 세상을 바꿔버리는 것을 보았다. 들라쿠르아는 정치색이 강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름없는 수많은 개인이 만든 위대한 혁명을 그림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실주의처럼 혁명의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건 감동이 덜하다. 혁명의 에너지를 한 컷으로 응축하여 그걸 보는 사람들이 위대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기로 했다.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그 에너지의 분출을 낭만주의로 영원히 박제하였다.

가상의 여인을 정점에 배치했다. 그녀는 '자유'다. 우리는 편의상 '자유의 여신'이라고 번역하는데, 작품 제목에는 거창하게 '여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녀는 자유의 화신이다.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에 반동하는 횡포를 참지 못해 거리로 뛰쳐나온 무명의 민중들이 공통적으로 마음 속에 품고 이정표로 삼았던 가치, '자유'가 여신의 형상으로 화신이 되어 민중을 이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헐벗은 옷차림에 눈길을 준다. 총칼 들고 길거리에 나서는데 TPO에 맞는 복식이 아니다. 들라크루아는 흡사 고전 신화 속 여신의 스테레오타입을 차용하여 '자유'라는 캐릭터를 설정하였다. 오래 된 그림이나 조각 속에 박제되어 있어야 할 여신이 길거리로 나와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며 민중을 이끈다. 만약 이 리더의 위치에 사회 지도자, 지식인, 위인이 등장했다면 감동은 싸늘하게 식었을 것이다. 긴장된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의 여성이 리드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긴장감에 '와우 포인트'가 완성되었다. 화가의 탁월한 연출력이다.


프랑스인들은 '자유'에게 마르안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여성 이름이었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반드시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곧 위대한 혁명을 완수한 '자유'라는 서사까지 완성된 셈이다.


마리안느는 삼색 깃발을 들고 있다. 170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는 우리가 아는 청-백-적 삼색기를 사용하다가 왕정복고 후 국기가 변경된 상황이다. 그러니 마리안느가 삼색 깃발을 들고 나섰다는 것은 민중들이 왕정복고 이전의 혁명기로 다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노라는 강력한 선언이다. 화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의도한 게 맞을 게다) 하늘에서도 청-백-적 삼색이 나타나고, 마리안느 발밑에 웅크린 인물의 옷에서도 청-백-적 삼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멀리 뿌옇게 그려진 노트르담 대성당의 탑 위에도 깨알같이 삼색기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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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리안느의 옆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부르주아, 허름한 옷을 입은 노동자, 누가 봐도 소년인 학생 계층이 함께 서 있다. '자유'를 지키는 혁명 앞에 신분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마리안느와 시위대의 발밑에 시신도 흥미롭다. 셔츠만 입고 하의가 벗겨진 시신은 평범한 노동자로 보이고, 그 옆에 군복을 입은 시신은 시위대를 진압하러 투입된 군인으로 보인다. 즉, 혁명은 피아 구분 없이 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라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림의 낮은 곳에 참혹한 시신을, 그 위에 웅크린 피폐한 사람을, 점점 피라미드 형태로 솟아오르며 그 정점에 팔을 치켜든 인물을 배치하는 건 들라크루아의 동료 테오도르 제리코가 <메두사호의 뗏목>에서 보여준 구도의 연출과 유사하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릴 때 제리코는 이 세상에 없었다. 들라크루아는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난 동료를 기리며 그의 구도를 차용해 혁명을 표현한 셈이며, 이것이야말로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에너지의 분출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낸 연출의 백미라고 하겠다.


프랑스 대혁명의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지 불과 30년만에 다시 사회가 퇴행하자 시민들은 다시 일어났고, 들라쿠르아는 그 7월 혁명의 순간을 절묘하게 기록하였다. 프랑스는 18년 뒤에 또 한 번의 혁명이 일어났을 정도로 퇴행과 진보를 반복하였고, 그렇게 울퉁불퉁하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자유'를 대변하는 나라로 세계사를 뒤바꾸어 놓았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뚫고 나온 이름없는 사람들, 그들을 길거리에 모이게 만든 소중한 '자유'의 가치. 아마 앞으로도 인류는 이 가치를 지키고 되찾는 길을 무수히 반복할 것이다. 정확히 1년 전, 이 땅에도 '자유'를 처단하려는 불의에 반대하며 송곳처럼 뚫고 나와 물꼬를 튼 위대한 이들이 있었다. 이름없는 그들에게 사의를 표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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