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 코린트, 카인 (1917)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카인 (Cain)
- 작가 : 로비스 코린트 (Lovis Corinth)
- 제작시기 : 1917년
- 전시장소 : 뒤셀도르프 예술궁전 미술관
한 사내가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바위가 들렸다.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그의 발밑에 사람이 보인다. 그는 지금 커다란 바위로 내려쳐 사람을 죽였다. 살인사건의 현장. 범인은 카인, 희생자는 아벨이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 앞부분에 등장한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의 아들이 카인과 아벨이었고, 형인 카인은 질투에 눈이 멀어 동생 아벨을 들에서 살해했다. 말하자면,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범인 셈이다.
성서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서양 미술계에서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품의 탄생년도를 보아야 한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다. 독일 화가 로비스 코린트는 그 참혹한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당시 독일 화가 프란츠 마르크나 아우구스트 마케 등이 징집되었다가 전쟁터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는데, 코린트는 고령이어서 전쟁터에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소위 '독일 인상주의 삼대장'으로 꼽히는 코린트의 그림이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수전증이 생겨 더 이상 섬세한 화풍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거칠고 강렬한 그림으로 변한 것이다. 인상주의에서 표현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카인>을 그렸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의 시점이다. 관람객은 피를 뒤집어쓰고 하늘을 쳐다보는 카인을 올려다보는 구도를 갖추고 있다. 즉, 관람객의 시선은 피해자인 아벨과 같은 높이다. 코린트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가해자를 바라보도록 그림을 그린 것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카인이 들에서 아벨을 죽이자 하늘에서 신의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그림 속 카인은 무언가 소리가 들려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이때 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었는데, 시신을 보고 날아든 것일 수도 있고, 하늘의 음성에 놀라 달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서커멓게 피를 뒤집어쓴 카인과 서커멓게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떼를 희생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게 된다.
굳이 희생자의 눈높이를 택하여 구도를 연출했다면 의도는 명징하다. 단순히 성서에 나오는 극적인 사건을 그리려 한 게 아니라, 성서의 사건을 차용하여 화가가 메시지를 설파하려는 의도로 보아야 한다. 참혹한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의 시선에서 이 광기와 공포를 바라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돌을 들어 사람을 죽이는 카인의 광기는 전쟁의 폭력과 다르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죄 없이 희생당한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전쟁을 고발하고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가져온 것으로 읽힌다.
카인은 저주를 받고 터전에서 쫓겨나는 형벌을 신으로부터 받았다. 살인의 결과는 신의 형벌이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신에게 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라고 보아야 할 듯.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의 당사자는 대부분 기독교 문화권 국가이므로 성서를 빌려 경고하는 게 가장 선명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매일 흉악한 소식을 들으면서도 할 수 있는 건 그리기뿐인 베테랑 화가는 그렇게 <카인>으로 거칠게 목소리를 높인다. 태초에 살인이 있었고, 그 억겁의 저주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그 죄값은 돌아온다고.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