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 바닷가 절벽 (1931)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바닷가 절벽 (Cliffs by the Sea)
- 작가 : 파울 클레 (Paul Klee)
- 제작시기 : 1931년
- 전시장소 : 뮌헨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무수한 색의 덩어리가 모였다. 요즘 표현으로 '픽셀아트'라고 할까? 가까이에서 보면 알록달록한 점의 군집이지만 멀리 떨어질수록 형태가 보인다. 바다와 수평선이 있고, 아마도 노을 진 것 같은 붉은 하늘이 있고, 단풍 든 것처럼 붉게 물든 지면이 있다.
파울 클레의 <바닷가 절벽>은 그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 색의 조합과 리듬을 탐구하며 그린 작품이다. 언뜻 보면 조금 더 앞선 세대에 쇠라나 시냐크 등이 탐구한 점묘화의 세계에 빠진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점을 찍어 그린" 점묘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점묘화보다는 모자이크화에 가깝다. 마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우디의 모자이크 예술처럼, 불균질한 색의 덩어리가 서로 뒤엉켜 하나의 조화를 완성하는 경지가 화폭에 담겼다. 점묘화가 하나의 색채를 가진 점이 모여 시각적으로 색을 인식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면, 클레의 작품은 각기 다른 색조와 농담을 가진 비정형의 덩어리가 모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클레는 무얼 실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미 그는 추상미술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고, 바우하우스 교수진 중에서도 핵심 인사였다. 그가 가르친 분야는 "구조와 형태"였는데, 회화뿐 아니라 건축과 산업디자인의 영역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이론'으로서 형태를 탐구하고 체계화하였다. 결국 형태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상이며, 무수한 색의 파편이 시각적으로 조화되어 두뇌가 인식하는 것이므로, 클레는 본인의 작품에서도 끝없이 형태를 탐구하였다.
<바닷가 절벽>이 탄생한 1931년은 그가 바우하우스 교수직을 사임하고 뒤셀도르프 아카데미로 직을 옮기던 시절이며,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의 포지션보다 화가 클레의 포지션에서 새로운 시도로 눈부신 성취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비정형의 색 덩어리가 리듬감 있게 배열되어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실험으로서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일견 스테인드글라스의 방식 같기도 한(그는 바우하우스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이론도 강의하였다) 이러한 실험은 "역동적이지 않다"는 점묘화의 한계를 넘어 생동감과 운율감을 느끼게 하는 진일보한 성취에 닿았다. 수평선의 가로 형태, 절벽의 톱늬 형태가 충돌하며 시각적인 긴장감을 주는 건 과연 "형태"의 교수님다운 표현이다.
마치 비정형의 색 덩어리가 하나의 세포이고, 무수히 많은 비정형의 세포와 세포가 뭉쳐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듯 하나의 풍경이 완성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린듯, 1만 피스짜리 퍼즐을 맞춘 듯, 색과 형태를 자유롭게 조절하며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 클레의 집요한 실험과 우수한 역량이 눈앞에 쏟아진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