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길을 비춰줄 등불

페르디난트 발트뮐러, 랜턴을 켜는 자화상(1825)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랜턴을 켜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a Lantern)

- 작가 : 페르디난트 발트뮐러 (Ferdinand Georg Waldmüller)

- 제작시기 : 1825년

- 전시장소 : 함부르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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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보는 듯 완전한 암흑 속에 광원 하나에 의해 연출되는 빛과 그림자의 극명한 대비,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화가 페르디난트 발트뮐러의 <랜턴을 켜는 자화상>이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발트뮐러는 32세의 젊은 화가였는데, 비엔나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주로 초상화나 풍속화 등의 의뢰를 받아 안정적인 작품활동을 유지하던 중이다. 당시 그가 맡은 작업 중에는 한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베토벤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도 있었다. 비록 건강이 좋지 않은 베토벤이 발트뮐러의 앞에 앉아있던 시간은 짧았다고 하지만, 아무튼 베토벤 정도의 거장을 그릴 때 흔쾌히 제안할 수 있는 비엔나의 화가로 인정받던 중이다.


그런데 발트뮐러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작품이 아닌, 누군가의 의뢰로 그려주는 작품에 갇힌 게 싫었던 것 같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발트뮐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림들은 대체로 실외에서 풍경이나 인물을 그린 풍경화 또는 풍속화가 많다. 노동자, 아이들, 나무 한 그루 등 지극히 평범한 곳에서 평범한 피사체를 찾아 그렸는데, 따뜻한 온기까지 전해지는 듯하여 비더마이어 회화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려주던 솜씨 좋은 화가에서, 오스트리아 미술사에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화가로 성장한 셈이다.


<랜턴을 켜는 자화상>은 바로 그 전환기에 완성된 작품이다. 렘브란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극단적인 빛과 어두움이 대비하는 자화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발트뮐러의 작품 리스트에서 찾기 어렵다. 이례적인 작품인 건 분명한데, 발트뮐러가 직접 창작 의도를 밝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이 해보지 않은 방식을 실험해본 것일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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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수준은 상당히 빼어나다. 랜턴에 불을 밝히는 순간, 광원으로부터 피사체가 빛을 받아들이거나 그림자가 생기는 입체감을 매우 디테일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빛과 그림자의 극단적인 대비로 더욱 풍성하게 입체감이 드러나고, 표정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평범한 옷을 입고, 컴컴한 곳에서 그저 랜턴 하나를 밝혔을 뿐인 32세의 젊은 화가의 표정에는 두근거리는 듯한 생동감이 엿보인다.


어쩌면 발트뮐러는 안정적인 커리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기 전, 자신의 앞길을 환하게 비춰주기를 바라며 출사표처럼 이 작품을 그렸을지 모른다. 나는 컴컴한 곳에 있지만 이 미약한 광원 하나가 내 앞을 환화게 밝혀주듯이, 앞으로 다가올 화가로서의 인생이 환하게 빛나기를 염원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하며 기대에 찬 진취적인 마인드가 이 한 점의 그림으로 응축된 듯 느껴진다.


"지금까지 수고했고, 앞으로 더 빛날 거야." 랜턴이 환하게 밝혀준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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