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작

프란츠 마르크, 푸른 말 1 (1911)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푸른 말 1 (Blue Horse I)

- 작가 :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 제작시기 : 1911년

- 전시장소 : 뮌헨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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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작품 자체로도 역사에 기록될 명작이지만, 그보다 더 위대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인상주의"라는 하나의 흐름의 시작을 선언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상주의"라는 이름도 작품명에서 유래한다. 프란츠 마르크의 <푸른 말 1>도 그와 같다. 작품 자체로도 역사에 기록될 명작이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이유는 "청기사(블루라이더)"의 시작을 선언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모네와의 차이가 있다면, "인상주의"는 그림에 반감을 가진 평론가가 비꼬듯남긴 이름이 전설이 되었고, "청기사"는 마르크를 포함한 화가들이 직접 그 이름을 지었다.


프란츠 마르크는 파란색을 신성하고 순수한 성질을 표현하는 색채로 사용하였고, <푸른 말 1>이 그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동지 바실리 칸딘스키는 말 탄 기사의 그림을 내세웠다. 자연스럽게 이 둘을 합하여 "청기사(블루라이더)"라는 이름이 탄생해 그들의 첫 전시 타이틀이 되었고, 그들과 함께 한 독일 뮌헨 중심의 표현주의 그룹의 이름이 되었다.


<푸른 말 1>이 세상에 공개되고 "청기사" 그룹이 탄생한 1911년. 당시 프란츠 마르크는 31세에 불과했다. 색상에 의미를 부여하여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는 것은 앙리 마티스 등 야수파가 먼저 개척한 길이지만, 마르크는 야수파에게 영향을 받아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갔다. 가령, 마티스가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자연색과 다른 원색을 아낌없이 사용했다면, 마르크는 혼란한 세상의 정화를 바라며 자연의 순수를 염원하는 철학을 드러내고자 자신이 정의한 색상을 자신의 법칙에 의해 엄격히 사용하였다.

<푸른 말 1>을 보자. 일단 푸른 색의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말의 몸통과 갈기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푸른 색으로 농담을 조절해 채색하였다. 상술하였듯, 마르크는 파란색이 신성하고 순수한 성질이라는 법칙을 정하였고, 말은 역동적인 야생성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되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대자연 속에 남아있는 인간이 추구할 순수한 이상향을 상징하는 피사체로 설정하였다. 그러니까 "푸른 말"은 현실에 없는 유니콘을 그린 게 아니라, 혼란한 세상을 정화하기 위하여 인간이 추구하여야 할 신성하고 이상적인 순수한 경지를 그린 것이다.


마르크는 그 외에도 붉은색은 문명과 물질이 만든 난폭한 성질, 노란색은 부드러움과 환희의 여성적 성질을 나타낸다. 왜 파란색이 순수이고 빨간색이 폭력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마르크가 그렇게 법칙을 정하였다. 그리고 동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주로 동물 그림을 통해 인간이 되찾아야 할 순수한 상태의 대자연을 표현하였다. 마르크의 다른 작품 <멧돼지> 리뷰에서 언급했듯, 순수를 되찾고 욕심을 정화하는 것은 그가 일관적으로 꾸준히 집중한 주제의식이다.

푸른 말이 붉은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 그림 속에서 말은 힘차게 달려나가는 모습이 아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정지한 채 머물러 있다. 마르크는 순수한 대자연은 살아있지만 문명의 무질서에 발이 묶여있다고 보았고, 이러한 시대의 철학을 말 한 마리와 다채로운 색상으로 표현한 셈이다. 독일 표현주의 그룹으로서 "다리파"와 쌍벽을 이루는 "청기사"는 그렇게 위대한 시작을 알렸다.


뮌헨은 상대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어서 "청기사"의 출사표가 처음부터 환영받지는 못하였다. 마르크의 법칙을 모르는 관객에게 <푸른 말 1>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퍼런 말 한 마리가 전부인 이상한 그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와 칸딘스키 투톱의 열성적인 창작으로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아우구스트 마케 등 젊은 화가들이 계속 모여들고, 이들의 열정적인 활동 앞에 "청기사"의 개성과 수준이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마르크가 강력히 원하고 외쳤던 정화는 현세에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탐욕의 파이가 커지고 충돌하면서 폭력의 끝판왕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1911년 <푸른 말 1>로 위대한 시작을 선언한 "청기사"도 1914년 제1차 세게대전을 기점으로 활동을 멈추게 된다. 마르크도 그 난폭하고 무질서한 전쟁터에 징집되어 전사하고 만다. 독일 표현주의의 위대한 재능이 그토록 순수를 외쳤지만, 그는 폭력의 현장에 강제로 끌려가 운명을 마쳤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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