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 빠르게

바실리 칸딘스키, 낭만적인 풍경 (1911)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낭만적인 풍경 (Romantic Landscape)

- 작가 :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 제작시기 : 1911년

- 전시장소 : 뮌헨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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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형체가 보이지 않지만 음악의 선율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듯, 사실적인 형체가 없는 점과 선과 면의 운율감으로 세상을 표현하여 감동을 준 추상주의의 아버지. 그의 1923년작 <하얀 점> 리뷰에서 이야기했듯 그의 그림은 교향악과 같다. 꽉 찬 음율의 조화가 독특한 리듬감을 선사한다.


1911년작 <낭만적인 풍경>은 아직 칸딘스키가 완전한 추상으로 나아가지 않은 시절의 작품이지만, 이미 이 때부터 사실적인 그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칸딘스키는 형체를 단순화하고 색의 조화와 대비, 그리고 화폭에 넘치는 운율감의 에너지로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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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보이는 것, 그 위에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보이는 것, 멀리 숲처럼 보이는 것, 그 사이로 달려가는 말처럼 보이는 것, 그 위에 올라탄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적재적소에 어우러진다. 배경설명 없이 보아도 "말 타고 달리는 풍경화"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데, 그 속에 디테일하게 표현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칸딘스키가 표현주의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추상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셈.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형체가 불명확한 피사체에서 강렬한 운동감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말 세 마리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같다. "다그닥 다그닥" 소리까지 들리는 기분이다. 점, 선, 면으로 교향악을 만들어낸 천재 화가답게 일찌감치 오감이 반응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렸다. 번지는 듯한 채색 기법도 이러한 속도감에 한 몫 거든다.


제목도 흥미롭다. <낭만적인 풍경>이라니, 여기에 낭만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당시 낭만(Romantic)은 낭만주의에 맞닿아있으며, 오늘날의 로맨틱과는 결이 다르다. 여기서 낭만이란, 내면의 감각적인 반응과 정서를 말한다. 낭만주의는 민족의 위인이나 위대한 사건, 아름다운 대자연 등의 힘을 빌려 감상자가 감응하도록 극적인 연출을 가미한다. 낭만주의 미술뿐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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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사람들이나 어디인지 알아보지 못할 풍경으로도 관람자의 내면에 정서를 자극하고 감정을 유발한다. 빠르게 달려가는 속도감, 숲과 절벽 사이를 달리는 긴장감, 태양이 작렬하는 계절감까지 모든 감정이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일어난다. 낭만주의와 정반대의 형식이지만 그 추구하는 바는 같고 성취 또한 뚜렷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낭만적인 풍경>이라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이 탄생한 1911년은 독일 뮌헨에서 청기사(블루라이더) 그룹이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해이다. <푸른 말 1>의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칸딘스키는 청기사의 투톱으로 선봉에 섰다. 우울하지도 않고 반항적이지도 않으면서 기존의 형식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감성이 넘치는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주목받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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