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쥐니에의 마차 (1908)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쥐니에의 마차 (La Carriole du Père Junier)
- 작가 :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 제작시기 : 1908년
- 전시장소 :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감상하면 "잘 그린 그림"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인체의 비율이 어색하고, 표정은 극단적으로 단순하다. 피사체마다의 원근감이 비현실적이어서 크고 작음이 과장되었다. 가령, 말과 개의 비율이 비현실적이고, 어떤 개는 햄스터 정도 크기로 축소되었다. 의도된 해체주의나 입체주의도 아니고, 사실적으로 그린 것도 아닌, 참 독특한 그림이다.
앙리 루소. 그는 공무원이었다. 그림을 배운 사람이 아니다. 세관원으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스스로 그림을 깨우쳤다. 스승이 없으니 어떤 화풍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40대의 나이로 전시회에 처음 그림을 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서툰 아마추어의 그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루소는 계속 노력했고, 도전했고,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줬다. 어느새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은 루소만의 화풍이 사람들에게 시나브로 받아들여지고, 오히려 루소에게 영향을 받아 그를 추종하는 젊은 작가까지 생겨났다.
<쥐니에의 마차>는 그가 화가로서 명성을 얻은 말년의 작품이다. 작품에 관하여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채소장수 쥐니에는 루소가 친하게 지낸 이웃이었고 마침 루소가 그에게 갚을 돈이 조금 있었는데 쥐니에가 돈 대신 그림을 원했다고 한다. 채소장수 쥐니에에게는 마차가 중요한 생계수단이었고, 마침 그가 새로 들인 말을 몹시 아껴 애마와 마차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사진을 남기듯, 또는 아끼는 자동차의 사진을 남기듯, 쥐니에도 애마와 마차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루소는 마차에 탄 쥐니에의 가족, 그리고 마차와 함께 걷는 쥐니에의 반려견을 하나의 시퀀스에 담았다. 요즘 식으로 비유하면 가족 사진을 실외에서 스냅 촬영한 것과 같다. 마차의 고삐는 쥐니에가 쥐고 있다. 그리고 모자를 쓰고 그 옆에 앉은 사내가 화가 본인이다. 루소는 쥐니에의 행복한 가족 사진에 게스트로 개입하여 단란한 순간에 함께 한다.
이런 이유로 제작된 그림이니 여기서 주인공은 말이다. 말은 모든 피사체 중 과장되어 크게 그려졌다. 선두에 선 강아지는 모든 피사체 중 과장되어 작게 그려졌다. 이 둘이 나란히 서 있으니 말이 훨씬 크고 웅장하게 보인다. 살짝 왜곡된 그림자와 원근감으로 인해 말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쥐니에의 애마는 작품 속에서 가장 위풍당당한 존재로 시선을 흡수한다.
인물은 입체감을 거의 느끼기 어려울 만큼 평면적으로 그려졌으며, 곰곰히 관찰해보아도 대체 어떻게 앉아있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마차와 인물은 현실적이지 않게 표현되었다. 화가로서 인정받은 말년의 작품이지만 여전히 서투름이 묻어있다. 그래도 루소는 그 서투름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다. 처음에는 비판받았지만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 꾸준한 노력과 집요한 열정은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