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드니, 성모와 성자 (1902)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성모와 성자 (Madonna with Child)
- 작가 : 모리스 드니 (Maurice Denis)
- 제작시기 : 1902년
- 전시장소 : 에센 폴크방 미술관
엄마가 아들을 번쩍 안아 든 모습. 열린 창문 너머로 마을 풍경도 살짝 보인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모자(母子)의 모습을 그린 것 같다. 인물 뒤편에 황금빛 고리만 없었다면. 이미 제목에서 성모(Madonna)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이론의 여지 없이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다.
이와 같은 정면 구도의 성모화는 중세 종교예술에서 자주 표현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이콘(Icon)이라 부른다. 대체로 이콘에 등장하는 성서 속 인물들의 얼굴 뒤로 후광이 빛나기 마련. 작품 속에서 황금 고리 형태로 성모와 성자 뒤편에 후광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2D 평면화인 이콘의 틀에서 벗어나, 이 작품은 입체감을 더 드러내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볼 법한 평범한 마을 풍경이 창밖에 보이도록 하면서 중세의 이콘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추구한다.
모리스 드니는 나비파의 핵심 멤버 중 하나다. 나비파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하는 '나비(Nabi)'를 그룹명으로 걸고 있듯이, 인간 내면의 신비스러움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선구자적인 위치를 추구하였다. 그 전까지 주류 미술계를 휩쓴 인상주의가 "눈에 보이는 것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하였다면, 그 안티테제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2D 캔버스에 그리는 방식을 탐구하였다.
드니는 그 중에서도 독특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종교적 그림을 의도적으로 그렸다. 그러니까 그가 표현하고자 한 내면은 곧 신앙심이다. 내면을 표현하는 화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표현주의가 대세가 되고 아예 형체를 파괴한 추상 미술까지 넘어가던 시기에, 드니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내면의 신비는 신앙이라 믿었고, 그것을 그렸다.
이콘의 재해석은 여기에서 발현한다. 신앙을 표현하는 미술로서 이콘은 단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구시대의 작법이다. 옛날 것이다. 드니는 동시대의 방식으로 이콘과 같은 종교적 내면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하였다. 과거 같으면 "불경하다"는 말을 들었겠지만,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급진적 변화가 동반된 시대에 드니의 시도는 오히려 얌전하고 경건한 축에 속하였다.
<성모와 성자> 외에도 드니의 작품 중, 심지어 종교적 메시지가 없는 일상적인 초상화에서도, 이콘의 구도를 빌려 동시대적으로 구도를 잡은 그림이 종종 발견된다. 3D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색하지만 입체감을 나름 드러낸, 그러나 사실적으로 보여지기 위함이 아니라 2D 캔버스 위에 색을 얹은 고유의 표현법이 돋보이는 그림이 많다.
나비파는 곧 와해되었다. 모두가 추구하는 내면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통일된 구심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드니는 종교화에 더욱 몰두한다. 세상이 과장된 색채와 분할된 구도, 심지어 추상적으로 나아갈 때에도 드니는 이콘과도 같은 종교적 그림에 더욱 몰두하였다.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방식은 변한다. 동시대의 방식으로 '고전'과도 같은 메시지를 표현하였다. 동시대 관람객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형식은 이질감 없이 친숙하지만 내용은 고전적이고 엄숙하게 느껴졌을 것이 분명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