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카머 궁전 (1909/1910) 가로수길 (1912)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카머 궁전 (Schloss Kammer on Attersee III)
- 작가 :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 제작시기 : 1909/1910년
- 전시장소 :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
원래부터 유명했지만 <키스> 이후 더욱 유명해진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 특유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표현력이 만개하였다. 초상화 의뢰가 밀려들고 국가적인 프로젝트에도 러브콜을 받으면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클림트는 정기적으로 오스트리아 알프스 아터 호수(Attersee)에서 휴가를 즐겼다. 한국인도 많이 찾는 할슈타트에서 멀지 않은 아름다운 호수다.
그런데 클림트는 아터 호수에서 휴가를 즐기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의뢰인의 요구를 최대한 맞춰줘야 하는 평시의 그림들과는 다른,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보는 실험적인 그림들이 여기서 탄생했다. 아터 호수에서 클림트의 실험정신은 풍경화 장르에 특히 집중되었는데, 호수가에 있는 카머 궁전(Schloss Kammer)은 그의 단골 소재였다.
이 작품 <카머 궁전>은 작품명에 III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연작의 일부다. 클림트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호수에 배를 띄우고 배 위에서 망원경으로 궁전을 관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눈으로 보는 자연스러운 원근감과 입체감이 사라진 평면적인 궁전이 화폭에 담겼다. 분명 노란 궁전 건물과 그 앞의 아름드리 나무가 있건만, 의도적으로 입체감을 거세하고 평면에 압착한 듯 2D 스타일 그림이 탄생하였다.
클림트는 어떤 실험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의 대표작에 단서가 있다. 역사에 남을 걸작 <키스>야말로 2D의 완성형이다. 물론 금박으로 입체감을 살리기는 했지만, 그림 자체로서는 인물과 배경의 원근감과 입체감이 사라지고 마치 중세 비잔틴 회화를 보는 듯 평면적이다. 소위 "클림트의 황금 시대"라고 불리는 전성기 작품이 대체로 그러하다.
그런데 <키스>로 대표되는 그의 대표작은 인물과 사건을 주제로 한다.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배경은 장식으로서의 기능만 가지니 평면적인 연출로도 시선을 사로잡는 포커싱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기법을 풍경화에 응용하면 어떻게 될까? 휴가 중 탄생한 <카머 궁전>이 그 실험의 결과물이다.
궁전과 나무는 완전히 일체화 된 듯하다. 대낮의 실외인데 그림자의 흔적도 없어서 그야말로 3D를 2D로 그린 느낌이 확연히 전달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호수의 표현이다. 수면에 반사된 궁전과 나무의 노란 빛과 초록 빛은 물결의 파동을 담아 인상주의 스타일로 깊이를 담았다. 눈에 보이는 피사체는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평면 장식적인 방식으로, 그것의 반영이 드리운 호수는 눈에 보이는대로 깊이있는 입체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클림트가 잘하는 특유의 기법으로 풍경화를 그려보면서,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과 다른 풍경화에 어울리는 기법까지 동시에 가미한 셈이다. 2D의 느낌이 지배하지만 마냥 2D는 아닌, 화가의 탁월한 센스가 일렁인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카머 궁전 가로수길 (Avenue in the Park of Schloss Kammer)
- 작가 :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 제작시기 : 1912년
- 전시장소 :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후에도 아터 호수를 종종 찾았다. 그리고 휴가를 즐기면서 붓을 들었다. 풍경화로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을 그린 그가, 1912년에는 또 다시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였다. <카머 궁전 가로수길>은 그가 사랑하는 피사체인 카머 궁전의 다른 각도를 다른 방식으로 그린 실험작이다.
카머 궁전의 입구 앞으로 보리수 나무가 '가로수길'을 만든다. 클림트는 그 풍경을 그렸다. 평소 x-y축으로 구성된 평면적 그림으로 재능을 보인 클림트에게 가로수길은 새로운 도전이다. 2열 종대로 늘어선 빽빽한 나무를 평면적으로 그렸다면 그저 빽빽한 초록색 덩어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무의 느낌도 살리면서 '길'의 느낌까지 살리려면 x-y-z축까지 필요하다. 즉, 3D 표현법이 필요하다.
클림트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기법을 선보인다. 그는 여전히 특유의 2D 화풍으로 멀리 있는 궁전을 그리고 그 앞의 나무를 그린다. 평면적으로 나무를 그리고, 그 앞에 또 평면적으로 나무를 그리고, 그 앞에 또 평면적으로 나무를 그리고, 마치 종이를 오려붙여 콜라주하듯 각각의 개체는 평면적이지만 그것이 중첩되어 이어지는 과정에서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하였다. 물성으로 입체감을 드러내는 콜라주도 아닌데, 클림트는 회화의 영역에서 그 느낌을 구현한 셈이다.
2D로 그렸는데, 그것이 3D로 보인다. 3D로 보이는 그림의 피사체를 하나하나 뜯어서 감상하면 2D로 보인다. 이 그림 속에는 2D와 3D가 섞여있다. 분명 하나의 화풍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2D와 3D를 모두 느껴지게 하는 깊은 내공을 만나게 된다. x-y축에 더해 궁전 앞으로 이어지는 '길'의 z축까지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고서 뻔하지 않게 표현하였다.
클림트는 이런 대단한 성취를 휴가 중에 완성하였다. 쉬면서 일하면 능률도 높아진다며 워케이션을 권하는 현대사회의 기준으로, 클림트는 이미 100년 전에 워케이션으로 높은 수준의 성과를 낸 프로페셔널 아티스트였던 셈이다. 의뢰인이 없는,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휴가지에서의 해방감이 천재 화가에게 더 깊은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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