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겨울 숲 (1900/1901)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겨울 숲 (Winter Forest)
- 작가 :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 제작시기 : 1900/1901년
- 전시장소 : 함부르크 미술관
1893년 에드바르 뭉크는 <절규>를 그렸다. 하늘이 비명을 지르는 걸 들었노라 이야기하면서. 유전병으로 인해 반복해서 가족을 사별하고 마음 속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았던 뭉크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면서도 독보적인 감각으로 눈에 띄는 그림을 그리며 서서히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에도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불안한 정신세계를 화폭에 담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1899년작 <죽음과 아이>처럼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차례로 떠나보낸 그의 트라우마는 평생 그를 괴롭혔고, 그 괴롭힘은 뭉크의 작품세계를 더 예리하게 발전시켰다.
이 무렵, 뭉크는 한 여인과 가까워졌다. 툴라 라르센. 부유한 여인이었고, 라르센 쪽에서 뭉크를 더 사랑했다. 결혼만 하면 평생 먹고 사는 걱정 없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뭉크는 라르센과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결혼이라는 선을 넘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유전병으로 가족을 사별하였던 트라우마는, 자신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면 그 병이 대물림될 것이라는 공포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관계는 뭉크의 손가락을 앗아간 총성 한 방으로 1902년에 파국을 맞게 된다.
뭉크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라르센을 피해 도망다니기 시작했다. 파리나 베를린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높이던 그가 고국 노르웨이의 시골을 전전하며 사람의 눈을 피했다. <겨울 숲>은 이 시기에 탄생했다. 눈 덮힌 겨울 숲 풍경. 그런데 어둡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나무는 흡사 철창처럼 폐쇄적이다. 멀리 배경의 숲은 그야말로 뾰족한 벽과 같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동물도, 아무 것도 없다. 감옥 같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어느 이름모를 숲. 철창과 벽으로 막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곳. 차갑게 쌓인 눈과 어두운 공기. 현실로부터 끝없이 도피한 뭉크에게 놓인 상황이 이와 같았다. 뭉크는 길을 잃었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겨울 숲>은 문자 그대로 겨울이 긴 노르웨이의 겨울 풍경화일 수도 있지만, 막다른 곳에 몰린 뭉크의 내면을 그린 상징화이기도 하다.
막다른 곳에서 울린 총성이 그나마 뭉크의 왼 손가락을 망가트린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오른손잡이 화가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라르센과의 관계도 끝났으며, 그가 그토록 도망치려 발버둥친 혼인 관계의 구속에서 벗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라르센과 벌인 일련의 사건은 "부자 상속녀와 가난한 화가의 다툼"이라는 가십거리로 소비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뭉크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순간에도 잊혀지지 않았고 이내 베를린으로 되돌아가 화가로서의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꽉 막힌 것 같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어딘가에 출구는 있었다. 길을 잃는 사람은 많다. 다시 길을 찾으면 된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