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파시를 그려보았습니다

이브 탕기, 약속대로 왔어 안녕 (1926)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약속대로 왔어, 안녕 (I Have Come as I Promised, Goodbye)

- 작가 : 이브 탕기 (Yves Tanguy)

- 제작시기 : 1926년

- 전시장소 : 베를린 샤르프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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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구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며 내 생각을 맞춰보라고 놀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 또는 기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19세기 말부터 텔레파시의 개념이 연구되었다고 하는데, 20세기 초 샤를 리셰(Charles Richet)가 대표적인 학자였다. 이래봬도 아나필락시스 연구로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학자인데, 초자연 현상에도 관심이 많아 평생 심령학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리셰의 저서에 따르면, 죽은 사람이 텔레파시의 형태로 산 사람에게 나타나 작별인사를 남긴다고 하였다. 우리도 가끔 사별한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꿈에서 보고 교감을 나눌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이 망자가 텔레파시로 산 자에게 작별인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솔직히 이게 과학적으로 연구할 주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명한 학자 리셰가 그런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을 본 화가가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였다.


초현실주의 화가 이브 탕기. 어느날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을 보고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어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철저히 무의식에 입각해 그림을 그렸다. 현실에서 벗어난 공간, 현실감각이 없는 인물의 형태, 기하학적 무늬, 음울하거나 신비로운 기운 등 그의 작품은 해석을 거부하는 난해함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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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그렇다. 공간감이 없는 불명의 배경에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검은 원뿔기둥이 서 있다. 그리고 원뿔기둥으로부터 소실점까지 선이 연결되고, 그 소실점의 위치에 물고기가 부유한다. 원뿔기둥과 물고기는 모두 검은 연기 또는 혼령 같은 기괴한 기운이 어려 있다.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데, 교감이라고 하기에 석연치 않다. 그리고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단색의 인물이 얼굴을 비추고 있다. 작품 제목은 <약속대로 왔어, 안녕>.


리셰의 연구를 시각화한 것이라고 하니 이 난해한 작품을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불명의 공간은 나의 의식이다. 검은 원뿔기둥은 나의 자아다. 멀리 부유하는 물고기는 망자의 자아다. 그렇게 나의 자아와 망자의 자아는 가느다란 선으로나마 접속되었고, 접속의 징표로 똑같은 검은 연기가 감싼다. 망자의 영혼이 멀리 나타나 작별 인사한다. 현실이 아니라는 건 딱 봐도 알겠다. 꿈 속에 사별한 가족이 나타나 교감하는 순간이라고 전제하고 들여다보면 왜 이렇게 그렸는지 이해되는 요소들이다.


난해한 초현실주의 작품이지만, 의미를 꿰어맞춰 풀이하면 재미있다. 텔레파시를 그려보겠다는 발칙한 시도, 그리고 진짜로 그렸고 보는 이로 하여금 이해하게 만드는 능력. 이브 탕기, 보통 내공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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