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브란덴부르크문(1929)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브란덴부르크문 (Brandenburger Tor)
- 작가 :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Ernst Ludwig Kirchner)
- 제작시기 : 1929년
- 전시장소 :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그는 모더니즘 시대에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베를린에서 전성기를 보낸 화가다. 도시의 에너지만큼 그의 그림도 에너지가 넘쳤고, 선과 색은 강렬했으며, 때로는 신경질적인 감정이 느껴질 만큼 날 것 그대로의 심리를 투영하였다. 싱싱한 활어처럼 그의 그림은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주었고 그의 명성도 높아졌다.
세상이 갑자기 뒤집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30대의 젊은 그는 전쟁터에 징집되었다. 매일 지옥을 보았고, 맨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그는 불과 2개월만에 심하게 정신질환을 앓고 제대하였다. 전쟁이 끝나기 전 그는 스위스로 떠났다. 매일 지옥 같은 소식이 전해지는 베를린을 떠나서, 전쟁 중립국에서 상대적으로 고요한 환경 속에 요양하며 계속 그림을 그렸다.
"다리파(디 브뤼케)"의 설립자이며 독일 표현주의 회화의 거장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신경질적일 만큼 날 선 그의 작품은 스위스에서 상대적으로 뭉툭해졌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마음의 병은 낳지 않아 계속 스위스에 머물렀다. 주로 스위스 풍경을 자신만의 표현주의 스타일로 그렸고, 자신의 우울한 내면이나 고립감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러던 1929년, 키르히너는 갑자기 베를린 그림을 그렸다.
<브란덴부르크문>은 제목 그대로 베를린의 랜드마크 브란덴부르크문(Branburger Tor)을 그린 작품이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다시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인 1920년대 말의 브란덴부르크문은 매우 붐비는 번화가였다. 그림 속에도 많은 사람과 자동차가 줄을 지어 오간다. 러시아워의 서울시내를 보는 것처럼 붐빈다.
혹시 스위스에 머물던 키르히너가 잠시 베를린에 들렀던 걸까? 그렇지 않다. 키르히너는 스위스에 정착한 이후 다시는 베를린에 가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만든 "다리파"도 전쟁과 함께 와해되었고 더 이상 그 뜨거운 베를린을 감당할 몸과 마음이 아니었으니. 그러면 <브란덴부르크문>은 전적으로 그의 기억과 상상으로 채워진 작품이다.
베를린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명성도 얻었으니 당연히 베를린에서의 기억은 그의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있었을 것이다. 브란덴부르크문도 수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기억 속의 브란덴부르크문을 소환해 교통체증처럼 붐비는 복잡한 도시의 풍경을 완성하였다. 물론 사실적인 묘사를 지양하고 채도 높은 색과 굵은 선으로 거칠게 채운 자신만의 표현주의 스타일은 버리지 않았다.
브란덴부르크문이 그림의 중앙 위편 가장 '주인공' 위치에 당당히 서 있다. 일견 도시의 랜드마크와 복잡한 대도시의 풍경을 그린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상하다. 브란덴부르크문은 분명 "문"인데, 모든 행렬이 그 앞에 멈춘듯 보인다. 문을 지나가는 사람도, 자동차도, 아무 것도 없다. 브란덴부르크문은 지금 "문"이 아니라 "벽"이다.
기억 속의 베를린을 소환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리긴 했으나, 그의 머릿속 베를린은 더 이상 에너제틱한 도시가 아니라 감정과 창의력이 꽉 막혀버리는 트라우마의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기억 속의 브란덴부르크문은 더 이상 "문"이 아니다. 키르히너가 세운 "벽"은, 어쩌면 세상과 단절하고 스스로 고립과 은둔의 길을 택한 그가 마음 속에 세운 벽일지 모른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