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테슈너, 독일 노동자의 산 (1915)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독일 노동자의 산 (The Mountain of German Labour)
- 작가 : 리하르트 테슈너 (Richard Teschner)
- 제작시기 : 1915년
- 전시장소 : 레겐스부르크 오스트도이치 미술관
오묘한 그림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아주 가끔 그림이 말을 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그림이 그랬다. 아니, 말을 거는 정도가 아니라 쉴새없이 떠드는 수다쟁이 같다. 화가 리하르트 테슈너. 처음 보는 이름이다. 주 활동무대는 회화가 아닌 듯, 인형극 연출이나 무대장치 제작 등에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그림 속에는 피라미드 같은 아치형 탑이 있고, 층층마다 창문 사이로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얼핏 보았을 때에는 직업군을 묘사한 줄 알았다. 세밀화처럼 깨알 같이 각 직군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상당히 고도의 메시지가 보인다. 굳이 해설을 찾아볼 필요 없이 1부터 100까지 직관적으로 꽂힌다.
탑의 바깥 가장 낮은 곳에는 정원사와 농부가 보인다. 탑의 저층부에는 식당 점원이 서빙 중이고, 기계도 열심히 돌아간다. 한 층 위에는 직물 공장으로 보이는 작업장이 있고, 옆 칸에 기계를 다루는 공장 노동자가 보인다. 그보다 쾌적해보이는 위층에는 과학자, 예술가, 작가가 저마다의 '전문직'에 열심이다. 더 위로는 의사와 학자가 있다. 그리고 음악가의 연주가 보이는 작은 창틈도 같은 층위에 있다.
탑의 꼭대기에도 사람들이 보이는데, 귀족처럼 잘 빼입은 무리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흡사 고대 조각상을 연상케하는 정점의 황금빛 기념물에 헌화하고, 누군가는 악기를 연주하고, 잔디밭에 앉아 바람을 쐬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누군가가 땀흘려 일하는 중에도 피크닉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하는 최상류층이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의미심장한 것은 군인의 위치다. 탑의 양쪽에서 무기를 들고 경계하는 군인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정확히 탑의 중간부터 지킨다. 즉, 탑의 바깥에 있는 농부나 정원사, 탑의 저층부에 있는 식당 점원 등은 군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흡사 <설국열차>의 꼬리칸처럼, 공권력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가장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블루컬러 노동자의 신세를 풍자하는 것으로 읽힌다.
화가 테슈너는 이 작품을 <독일 노동자의 산>이라 명명하였다. 1800년대 중후반,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독일 사회는 급속히 산업화되었고, 노동자의 인권을 세심하게 보듬어 안지는 못했다. 귀족과 중산층, 하층민 등 신분에도 일종의 계급화가 봉건시대로부터 이어졌고,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이런 현실을 담담한 어조로 "보여주기 위해" 테슈너는 이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사회를 바꾸자는 것일까? 또는 사회가 이러하다고 강연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냥 이 사회가 지금 이렇다고 3인칭 시점에서 보여주는 그림이다. 거기엔 긍정이나 부정의 뉘앙스가 없다. 그냥 객관적인 전달이 전부다. 하지만 각 층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메시지로 수용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21세기에 사는 관람객에게도 이 그림은 계속 말을 건다. "이게 100년 전 일일까요? 지금은 상황이 다를까요? 아닐 걸요.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몇 층에 살고 있나요?" 이 또한 각 층위에 해댱하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메시지로 들릴 것 같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