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는 발레를 그리지 않았다

에드가 드가, 푸른 옷의 무희들(1890) & 두 명의 무희(1898)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푸른 옷의 무희들 (Dancers in Blue)

- 작가 :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 제작시기 : c.1890년

- 전시장소 :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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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는 평생에 걸쳐 발레를 그렸다. 발레 소재 그림만 드로잉 포함 1천점 이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무수히 많은 익명이 소녀들이 그 속에 담겨있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는 가난한 소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발레를 하고 '스폰서'를 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스타지만 그 뒤에 병풍처럼 춤을 추는 무명의 무용수는 파리의 고상한 척하는 관객에게는 탐닉의 대상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드가는 무대 위 화려한 발레리나보다 무대 뒤편에서 고단한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어린 노동자로서의 발레리나를 주목했다. 당시 '스폰서' 문화는 공연 외부인도 대기실에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고, 드가는 수시로 무대 뒤편을 드나들며 3인칭 시점으로 그 모든 현실을 바라보았다.


발레리나만큼이나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을 그린 드가의 실력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병을 앓으며 둔해졌다. 자연스레 드가는 섬세한 디테일보다 전체적인 빛과 움직임의 질감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림의 선은 흐릿하게 번지고 인물의 이목구비는 뚜렷하지 않게 되었지만, 마치 빛이 퍼지고 시간이 흐르는 듯한 공기의 질감을 그려냈다.


<푸른 옷의 무희들>은 드가가 무대 뒤편에서 네 명의 발레리나를 관찰한 그림이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이제 곧 공연이 시작하는 듯 네 명의 소녀는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동작을 상기하는 듯하다. 같은 공연에 올라갈 무용수니까 옷도 똑같다. 드가는 푸른 옷을 입은 네 명의 소녀를 훔쳐보듯 3인칭 시점으로 이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그런데 똑같은 옷을 입은 네 명의 무희는 다른 각도를 보여준다. 앞뒤좌우를 보여주는 무희들이 마치 원을 그리듯 모여있다. 디테일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림인만큼 이목구비는 뚜렷하지 않다. 같은 옷, 같은 머리스타일, 같은 체형. 어쩌면 네 명이 아니라 한 명의 발레리나를 마치 카메라 다중 촬영 기법을 차용해 그린 것처럼 보일 정도다. 드가는 조소에도 능했다. 점토나 밀랍으로 발레리나 조소를 만들고, 앞뒤좌우 면밀히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던 화가다. 그러니까 드가가 관찰한 한 발레리나의 앞뒤좌우를 마치 네 명처럼 펼쳐 다중 촬영 기법처럼 그림으로 그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네 명의 한 장면일까, 한 명의 네 장면일까? 무엇이 되었듯 작품 속에서 발레리나는 원을 그리듯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운동감과 리듬감을 보여준다. 빛을 머금어 흐릿한 채색 기법은 운동감을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드가는 공연 시작 전 '예열'하며 서서히 달궈지는 에너지를 담았다.


드가는 발레를 그리지 않았다. 에너지가 고조되기 전 순환하며 달궈지는 공기의 질감을 그렸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두 명의 무희 (Two Dancers)

- 작가 :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 제작시기 : 1898년

- 전시장소 : 드레스덴 알베르티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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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르고, 그 사이에도 꾸준히 발레 그림을 그리던 드가가 1898년 <두 명의 무희>를 발표했다. 말년으로 갈수록 건강 문제로 붓을 드는 게 어려워진 드가는 파스텔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파스텔로 그려 더욱 번지는 '필터를 적용한'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였다.


이 작품 역시 무대 뒤편을 배경으로 한다. 어딘가에 털썩 주저앉아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을 보니 이제 막 공연을 마친 것 같다. 그러나 주저앉은 가운데에도 두 명의 발레리나는 서로에게 몸을 돌리고 열심히 수다를 떠는 것 같다. 오늘 무대는 어땠는지, 실수한 건 없었는지, 관객 반응은 좋았는지, 혹은 뭘 먹으러 갈지, 이런 대화 주제일 것이다.

흥미로운 건 작품의 구도다. 드가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하이앵글 구도로 두 명의 소녀를 포착했다. 그림의 정중앙에는 주인공의 얼굴이 아니라 주인공의 발이 놓였다. 얼굴과 상체는 액자 구석에 위치하여 구도가 몹시 불안정하다. 긴 의자의 선은 수평에서 비스듬히 기울어져있다. 이것을 사진에 비유하면, 마치 높은 곳에서 망원 렌즈로 사진을 찍은 뒤 피사체가 앵글 밖으로 잘려나가지 않도록 원본을 기울여 크롭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흡사 파파라치 샷처럼 몰래 훔쳐보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과감한 구도로 드가는 막 공연을 끝낸 지친 두 소녀를 바라본다.


만약 일반적인 정면 구도로 그렸다고 가정하자. 의자에 앉아 수다 떠는 소녀들만 그 속에 담겼을 것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구도이기 때문에 발레화를 벗어던지고 아픈 발과 무릎을 주무르며 휴식을 취하는 소녀들이 그 속에 담길 수 있었다. 즉, 드가는 단순히 발레리나의 대기실 수다를 포착한 게 아니라, 어린 소녀들이 고된 노동을 마친 직후 긴장감이 풀어진 순간을 포착한 셈이다.


두 소녀는 친밀해보인다. 오늘의 노동은 비교적 만족스러운 것 같다. 당장 아픈 발만 마사지해주고 옷을 갈아입고 퇴근할 것이다. 고단한 노동 중에도 소소한 관계 속에 작은 보람을 느끼는 우리네 노동자의 매일과 같다.


드가는 발레를 그리지 않았다. 힘든 일을 마친 고단함, 그리고 그 속에 느껴지는 찰나의 온기를 그렸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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