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흔들렸어요

한스 올데, 보르크펠트의 홀 (1899)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보르크펠트의 홀 (A Hall in Borgfeld)

- 작가 : 한스 올데 (Hans Olde)

- 제작시기 : 1876년

- 전시장소 : 카셀 신 미술관


152small.jpg

사진 찍어본 사람은 다 경험해봤을 것이다. 실내에서 사진 찍을 때 상대적으로 밝은 창문 쪽에 포커스가 맞고, 상대적으로 어두운 실내의 움직이는 피사체는 흔들리거나 어둡게 촬영된 경험. 만약 밝은 쪽을 찍을 의도였다면 실내의 흔들린 실루엣은 형체가 또렷하지 않아도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이 딱 그러하다. <보르크펠트의 홀>이라는 제목이 언뜻 와닿지는 않으나, 쉽게 생각하면 '보르크펠트에 있는 어느 집의 현관 로비'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보르크펠트는 독일 북부 브레멘 근교에 있는 도시. 독일 북부는 낙농업이 발달했는데, 등장인물이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은 우유통으로 보인다.


냉장시설이 없던 그 시절, 갓 짠 우유는 서둘러 지하의 서늘한 저장고로 옮겨야했다. 해가 쨍쨍한 날씨라면 더욱 그러했으리라. 농부는 우유통을 짊어지고 바삐 실내로 움직인다. 그 빠른 움직임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하더라도, 만약 건물 바깥의 밝은 영역에 초점이 맞으면 실내의 농부는 흔들린 사진이 되었을 것이다.

152small1.jpg

독일 화가 한스 올데가 그런 그림을 그렸다. 해가 쨍쨍한 창문 바깥, 출입문 바깥은 채도와 명도가 높고 피사체도 선명하다. 심지어 나뭇잎의 위아래 명암까지 보인다. 물론 창틀로 스며들어오는 그림자도 쨍하다. 바깥에 선 농부는, 비록 모자 그늘에 얼굴이 가려지긴 했지만 옷의 단추와 모자의 리본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반면 실내의 농부는 '흔들렸다'고 표현하는 게 적확하다. 만약 이 인물이 주인공이라면 이 사진은 다시 찍어야 한다. 하지만 바깥의 인물이 주인공이라면, 실내의 인물은 사진에 역동적인 리듬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스 올데의 의도는 전자에 가까웠으리라. 아, 이것이 찰나의 순간을 담는 카메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붓질의 결과로 탄생한 회화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다.


그 와중에 고양이까지 등장한다. 당시 유럽 농가에서 가장 환영하지 못할 '빌런'은 다름 아닌 쥐다. 그래서 고양이는 농가의 중요한 친구였다. 오늘날의 반려묘도 아니고 길고양이도 아닌, 그 중간 어느 즈음의 위치에서 농가와 고양이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생했다. 실내까지 들어와 벽에 영역표시하는 고양이는 깨알 같은 잔재미를 더하는데, 고양이 역시 실내에서 움직이는 피사체답게 '흔들렸다'.

152small2.jpg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을 관찰했다. 실내에서 또는 실외에서, 인물을 대상으로 또는 자연으로 대상으로. 그런데 오늘날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쫓아다니는 사진작가들의 미션도 그와 같다. 빛을 관찰하고, 실내 또는 실외에서, 인물 또는 자연을 대상으로 자신의 관점을 통해 찰나를 포착해 작품을 만든다.


이 그림은 꼭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이기는 하지만 사진이 보편적이지는 않던 그 시절, 사진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마치 사진을 찍은 것 같은 그림을 그린 화가. 그의 흔들린 사진에서, 아니 그림에서, 천재성을 발견하며 박수를 보낸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이전 03화내 얘기를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