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들의 개입 (1799)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사비니 여인들의 개입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 작가 : 자크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 제작시기 : 1799년
- 전시장소 :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것은 전설과 같은 이야기다. 고대 로마제국의 창시자 로물루스는 나라에 여성이 부족하자 인근 사비니족 여성들을 꾀어 납치한다. 그들은 불가항력으로 로마 남성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살아간다. 사비니족의 입장에서는 대재앙이다. 부족의 딸들이 인근 강대국에 납치되었다. 딸이 납치되었는데 상대가 누구든간에 "I will look for you.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를 외칠 수밖에.
사비니족이 로마를 침공했다. 로마족은 이에 맞선다. 사비니족은 빼앗긴 딸을 되찾기 위해, 로마족은 아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둘 다 조금도 물러설 수 없다. 결사항전이다. 사비니의 여인들은 미칠 노릇이다. 사생결단의 전쟁 중인데 한쪽은 아버지, 한쪽은 남편이자 내 자식의 아빠인 셈.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다. 일단 전쟁을 끝내는 게 먼저다.
전쟁터에 여인들이 뛰어들었다.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자식들까지 전쟁터에 데리고 와서 전쟁을 가로막았다. 사비니족은 딸들이 가로막으니 공격할 수 없다. 로마족은 아내가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가로막으니 공격할 수 없다. 결국 전쟁은 멈췄다. 로마와 사비니는 화합하고 통합국가를 이루었다는 게 전설의 요지다. 물론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만,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는 전설을 공론화하고자 했다.
그림이 발표된 1799년이라는 해가 중요하다. 이로부터 10년 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단숨에 세상이 바뀌리라는 기대와 달리 10년간 극심한 분열과 갈등과 혐오의 시기가 이어진다. 자크루이 다비드 역시 이 시기 옥고를 치르며 격랑에 휩쓸리기도 했다. 그 암울함이 최고조에 달한 1799년 마침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다. 즉, 다비드가 이 그림을 작업한 시기는 프랑스가 한창 갈등하고 분열하고 파를 갈라 싸우던 시절이다. 마치 로마족과 사비니족이 그러한 것처럼.
극심한 분열과 갈등 중 나폴레옹의 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뒤 다비드가 이 그림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그의 의도는 명징하다. 지금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당신들은 "딸을 빼앗긴 아버지" "아내를 빼앗길 남편"처럼 다툴 명분은 있겠지만, 정작 당신들의 딸이자 아내인 "국가"가 망가지고 있다는 경고다. 이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것은 사비니 여인들이다. 이 여인들을 명분삼아 두 패가 싸우고 있지만 그게 무의미하다고 다비드는 역설한다.
딸을 빼앗긴 아버지가 참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죽더라도 무기를 들고 나서는 게 옳다. 아내를 빼앗아가려는 이들을 보며 환영한다고 박수칠 남편은 없다. 내가 죽더라도 무기를 들고 나서는 게 옳다. 모두 저마다의 명분이 있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며, 그 관점에서는 전쟁도 불사할 당위가 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에는 어리석게만 보인다. 딸을 되찾겠다며 손주의 아버지를 도륙했다는 자들, 아내를 지키겠다며 장인을 죽이겠다는 자들,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결국 보다못한 사비니 여인들이 나섰다. 사비니족을 향해 아버지의 발을 붙들기도 하고, 손주를 치켜 들어 소리친다. 로마족을 향해 자식들을 창검 앞에 굴리며 애원한다. 더 이상 전쟁이 계속될 수 없다. 여인들의 개입은 화해와 통합을 이끌어냈다.
마치 그림의 중앙에 팔을 벌려 양측을 말리고 자제시키려는 여인처럼, 다비드는 이 한 점의 그림으로 정치적 위치에 따라 서로 잡아먹으려 드는 정치인들에게 강력히 소리친다.
제발 그만 좀 싸우라고. 너희들이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명분은 알겠는데, 정작 그 싸움에 희생되는 건 너희들이 지키려는 명분이라고. 국가와 국민이라고. 이 무슨 어리석인 행동이냐고.
그 외침은 원칙적으로 옳다. 때로는 한 발 떨어져 봐야 진실이 보인다. 특히 조금도 타협할 틈이 없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만 좀 싸우라는 외침, 21세기에도 유효하다. 그것도 지구 구석구석 곳곳에 유효하다. 그게 참 싫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