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노트르담은 무슨 색?

막시밀리앵 루스, 노트르담 (1901-1904)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노트르담 (Notre-Dame, Viewed from the Quai Saint-Michel)

- 작가 : 막시밀리앵 루스 (Maximilien Luce)

- 제작시기 : 1901-1904년

- 전시장소 : 쾰른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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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이다. 지금도 우리가 파리 여행 중 볼 수 있는 바로 그 모습이다. 이 웅장한 고딕의 멋은 수백년 간 늘 그 자리에 존재했고, 변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회화가 유행하고, 화가들이 실외에서 빛의 변화를 감지하며 찰나의 '인상'을 그림으로 기록하던 시절, 피사체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주목한 화가가 있었다.


막시밀리앵 루스. 그는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 즉 분할주의 기법을 받아들여 신인상주의 화가로 한창 활동하던 중이었다. 그는 마치 클로드 모네가 루앙 대성당 연작을 그렸듯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연작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적어도 10점 이상의 작품이 존재하는데, 같은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모든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게 흥미롭다. 루스는 이 거대한 문화유산의 동서남북은 관심이 없어보인다. 오로지 같은 방향에서 바라보고, 날씨와 일광에 따라 변하는 그 무드를 포착하였다.


오늘날 기준으로 가장 유명한 버전은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1901년 작품이다.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는 버전은 그와 상당히 유사한 1904년 작품이며, 쾰른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스가 이 작품을 1901년부터 1904년까지 그렸다고 하니 오르세 미술관 버전을 내놓은 뒤 다시 고심하여 무려 3년간의 정성을 담았다고 하겠다.

루스는 돌로 지은 대성당에 반사되는 빛의 질감에 주목했다. 게다가 대성당은 장식과 창문이 많아 빛을 받는 면과 그림자가 지는 면이 매우 복잡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여서 주변 풍경도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변화를 포착하여, 그림으로 남길 '인상'이 확정되면 작업실에서 기억에 의존해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점을 찍어 대성당을 그린다.


이러한 분할주의 기법은 다른 색의 점을 찍거나 붓질을 이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구름이 하얀색이라서 흰색으로 칠하는 게 아니다. 각기 다른 색으로 점과 같은 작은 붓질을 수없이 반복해, 멀리서 관람할 때 그 색이 시각적으로 혼합되어 하얀색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물론 현실의 색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의도는 굳이 내비치지 않는다. 찰나의 '인상'에서 출발해 색을 혼합하여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루스는 햇빛을 받는 부분은 밝은 노란 톤을 강조하였고, 그늘 진 곳도 일정한 색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붉은 톤을 사용하여 보라색에 가까운 느낌이 들게 하였다. 반면, 하늘은 파랗고, 하늘 아래 광장과 다리도 파랗다. 그런 와중에 깨알같은 묘사는 섬세하다. 광장과 다리의 사람들과 마차는 정교한 미니어처를 보는 듯 저마다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명부와 암부의 선명한 대비로 입체감은 또렷하다. 흔히 인상주의에서 볼 수 있는 흐릿하고 뭉개진 피사체도 없다. 쇠라처럼 아예 점을 찍지는 않았으나, 정성스러운 붓질로 점을 찍는 것과 같은 효과를 취하면서 미니어처 같은 섬세한 연출도 놓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작업을 그는 10회 이상 반복했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선으로.


오늘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무슨 색일까? 루스의 눈에 보였던 찰나의 '인상'은 어쩌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조합하고 싶은 색의 하모니가 몇년 주기로 캔버스 위에 노트르담을 정성스레 물들인 건 아닐까?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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