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티슈바인, 로마 캄파냐의 괴테 (1787)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로마 캄파냐의 괴테 (Goethe in the Roman Campagna)
- 작가 : 요한 티슈바인 (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 제작시기 : 1787년
- 전시장소 :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젊은 베르터의 고뇌(젋은 베르테르의 슬픔)>로 일약 유럽에 명성이 알려진 젊은 소설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바이마르 대공비의 초청을 받아 1775년 바이마르에 정착하였고, 이후 작품활동보다는 국정에 참여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게 되었다. 현대식으로 비유하면, 국토부 장관, 국방부 장관, 재경부 장관 등의 요직을 번갈아 맡았고, 국립도서관 관장을 맡은 셈이다. 소설가로서의 명성에 정치 지도자로서의 품위와 학식도 알려져 괴테는 유럽에서도 유명한 '셀럽'이 되었고, 그 명성은 훗날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했을 때 괴테를 찾아가 따로 환담하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괴테는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졌다. 하나는, 작품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문인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고민하였고, 다른 하나는, 이토록 혼란한 시기에 독일 민족이 분열되어 강대국 사이에 위태롭게 둘러싸인 현실을 고민하였다. 바이마르에서의 생활이 11년째가 되자 괴테는 잠시 일을 내려놓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것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었다. 그가 평소 동경하였던 고대 로마를 직접 보고 그의 예술적 영감을 리프레쉬함은 물론 독일 민족의 나아갈 방향도 탐색하고 싶은 목적이었다.
괴테는 약 700일간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며 고대 로마가 남긴 '고전'을 견학하였다. 그의 여행기는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참고로,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으니 굳이 말하자면 괴테는 나와 같은 여행작가들의 먼 조상님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독일 화가 요한 티슈바인은 괴테가 이탈리아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몹시 동경한 괴테의 여행을 돕고 싶어서 길잡이를 자처하여 괴테와 함께 여행하였다. 마치 팬이 아이돌과 함께 여행하는 셈이니 요즘 표현으로 '성덕'을 이룬 셈. 그런데 티슈바인도 괴테와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로마의 '고전'이 독일 민족의 혼란한 현실 속에서 이정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괴테와 비슷한 고민, 비슷한 인사이트를 가진 것이다.
티슈바인은 '고전'을 드러낼 단 하나의 작품을 원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유적이 있는 로마 캄파냐를 여행할 때 괴테에게 모델을 부탁하였다. 괴테는 평상시에 입지 않을 것 같은 고전적인 복식을 갖춰입고 '고전' 앞에서 이상적인 포즈를 취하였다. <로마 캄파냐의 괴테>는 유명한 인물의 초상화로 보이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괴테의 초상화가 아니라, 괴테라는 상징적 인물이 '고전'의 일부에 동화되는 이데올로기적 그림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 그러니까 그림 속에서 괴테는 유명인이 아니라 '고전의 화신'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그림 속 괴테의 포즈는 다소 부자연스럽다. 한 인물의 초상화가 아니라, '고전'의 상징성을 드러내도록 마치 로마의 조각상처럼 보이는 포즈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막상 괴테는 이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사자가 보기에는 어색하고 민망했을지 모른다. 게다가 괴테와 티슈바인은 거듭된 의견 충돌로 결국 여행의 동행을 3개월만에 마쳤기 때문에 이 작품은 괴테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훗날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을 집필하고 이 책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보고 온 '고전'의 바탕 위에 탄생한 사상을 통일된 독일 민족의 국가(1871년 독일제국)의 뿌리로 여긴다. 실제로 독일제국 수립 후 괴테는 다시 한 번 전국적인 위인으로 소환되었다. 이미 40여년 전에 서거한 위인은, 그가 남긴 사상의 생명력으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숨쉬었다.
바로 이 1800년대 후반, '괴테 붐'이 일던 시기에 마침 <로마 캄파냐의 괴테> 그림이 재발견되었다. 수집상이 보관하던 것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에 기증하였고, 한 민족의 운명을 바꾼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한 컷으로 보여주는 이 상징적인 그림은 큰 인기를 얻었다.
포즈를 취한 모델은 이 그림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모델과 화가는 트러블이 생겨 결별하였고, 그림은 소리소문 없이 묻혀졌다. 하지만 죽어서도 '아이돌'급 인기를 누린 모델의 상징적 존재감이 묻혀있던 그림을 되살려냈고, 이 그림은 한 민족의 가장 찬란한 순간의 '아이돌(상징)'이 되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