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포인트 찰리 & 글리니케 다리
체크포인트 찰리
대도시 한복판, 서울에 비유하면 동대문이나 홍대쯤 되는 곳, 왕복 4차선 도로의 중앙분리대에 군복 입은 사람들이 서 있다. 그들은 커다란 미국과 소련의 국기를 들고 서 있다. 그 뒤로는 컨테이너 부스 같은 초소 건물이 있고, 그 앞으로는 높은 곳에 잘생긴 군인의 얼굴이 증명사진처럼 걸렸다.
이상한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첫째, 여기는 독일인데 웬 미국과 소련 국기란 말인가, 심지어 소련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데. 둘째, 지나가는 사람들 놀라게 왜 군복을 입고 저러고 있나. 셋째, 자동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분주한 도로 한복판에서 저러고 있는 건 또 뭔가. 넷째, 저 높이 걸린 사진 속 잘생긴 군인 양반은 대체 뭐 하는 분이신가.
여기는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군사용어로 A, B, C를 알파, 브라보, 찰리라고 하니까 체크포인트 찰리는 ‘검문소 C’, 그러니까 세 번째 검문소 정도 되는 별 것 아닌 이름이다. 몇십 년 전, 이 자리에는 실제 이 모습의 검문소가 있었고, 총 든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여기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였고, 체크포인트 찰리는 서베를린의 미군이 지키는 국경 초소였다. 물론 허가받은 극소수의 사람 외에는 통행할 수 없었으니 지금처럼 자동차가 쌩쌩 지나다닐 일은 없었다.
독일이 통일된 후 검문소는 더 이상 필요 없었기에 체크포인트 찰리도 철거되고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일종의 관광상품으로 원래 그 자리에 레플리카를 다시 놓았다. 바로 옆에 분단에 관한 새로운 박물관을 만들고, 박물관 직원들이 군복을 입고 검문소 앞에서 관광객과 사진을 찍어준다.
K가 말했다. “재미있겠다. 우리도 가서 사진 찍자.”
J는 고개를 저었다. “돈 내야 찍어주는걸. 나는 그냥 여기서 구경할래. 그게 더 재미있어.”
성별도, 피부색도, 연령도 다른 관광객들이 수없이 ‘무단횡단도 불사하며’ 검문소 앞에 달려가 사진을 찍는다. 직원들은 참 노련하다. 멋진 포즈를 잡고, 또 포즈를 잡아주고, 평생 추억으로 남을 사진을 메모리카드에 남겨준다. 중앙분리대에 있으니 줄을 서서 기다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길 건너편에서 눈치 보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달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그 모습을 타임랩스처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J의 말대로였다. “거수경례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K의 괜한 ‘군부심’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마치 테마파크와 같다. 분단의 역사를 테마로 하는 유원지와 같다. 사람들은 이 낯설고 이상한 풍경에 녹아들어 기분 좋은 경험과 인증샷을 남기고 돌아선다.
들뜬 K의 손을 잡고 J가 어디론가 걷는다. 딱 한 블록만 이동했지만 이제 유원지 같은 들뜬 분위기는 없다. 그리고 그곳에 기둥처럼 기념비가 하나 서 있다. K가 읽어본다.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 그저 자유를 원했을 뿐인데(er wollte nur die Freiheit). “이 사람은 누구야?”
J는 K에게 페터 페히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베를린에 살던 18세 청년 페터 페히터는 1962년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에 맞고 장벽 너머에 쓰러졌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청년을, 서베를린에서 구하고자 하면 구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충돌이 전쟁으로 번질지 모르는 극단적인 상황에 서베를린에서는 차마 손을 쓸 수 없었다. 청년은 약 1시간 동안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갔고, 서베를린 시민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전쟁이 뭔데, 이념이 뭔데, 저 흉물스러운 장벽이 도시를 가르고 국가를 가르고 민족을 갈라 이 비극을 초래하는가.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구하지도 못하는데 국가가 왜 필요한가.” 아마 이런 식의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K는 짐작했다.
이후 서베를린에 무정부주의가 번지고 평화와 반전을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뮤지션이 서베를린을 사랑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데이비드 보위는 독일인도 아니지 않은가!
불과 반세기 전 이곳은 그토록 분노와 공포가 공존하는 괴이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K는 생각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1960년대로 돌아가겠어.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거야. 딱 30년만 참으면 이 흉물스러운 장벽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를 드나들며 웃고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비웃겠지. 미쳤다고 할 거야.”
“그래, 미친 소리가 맞아. 페터 페히터의 비극이 벌어진 그 자리가 몇십 년 뒤 이렇게 바뀐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몇십 년 뒤에는 군복 입은 사람들이 총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으며 관광객과 놀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냐고.” 생각의 꼬리를 물고 J가 담담히 말을 잇는다. “우리는 페터 페히터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리 사이에 반세기의 세월 차이만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차원을 이동한 거야.”
다시 체크포인트 찰리로 돌아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웃음을 머금은 채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다. 반세기 전 여기에 서로 포신을 겨누며 대립하던 탱크는 이제 없다. 총 든 군인도 이제 없다. 그래, 이건 시간이 흐른 게 아니다. 차원의 이동이 분명하다.
통일 이전의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이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사람들에게 통일 이전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차원에 살고 있다. 통일은 차원을 옮긴다. K는 남북통일 이후의 미래를 상상해보았지만 딱히 뚜렷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지금 상상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다른 차원이 펼쳐질 텐데.
K는 마지막 궁금증을 풀고자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저기 증명사진 같은 군인은 누구야?”
J는 대수롭지 않게 알려준다. “굉장한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미안. 사진 속 주인공은 서베를린에서 마지막까지 복무한 미군 병사의 사진 중 하나를 골랐다고 해. 정작 사진 속 당사자도 자신의 얼굴이 이렇게 중요한 곳에 쓰일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
“그거 초상권 침해 아니야?” K의 물음은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J도 그저 웃으며 K를 다음 장소로 이끌었다.
글리니케 다리
지금 J와 K는 어느 다리 위에 서 있다. 다리 양편으로 넓은 글리니케 호수(Groß Glienicker See)가 상쾌한 풍경을 뽐내고 있는 게 참으로 그림 같다. 시간만 있으면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트라도 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시원하다.
J가 묻는다. “스파이 브릿지(The Spy Bridge)라고 들어봤지?”
K가 영화를 본 기억을 되살린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말이지? 그게 독일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잖아. 그러면 혹시?”
“그래, 여기가 바로 스파이 브릿지야.” J가 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ücke)를 소개했다. “이쪽 끝은 베를린, 저쪽 끝은 근교 도시 포츠담(Potsdam)이야. 그러니까 글리니케 다리는 두 도시를 연결하는 셈이지.”
독일 분단 시절 포츠담에 소련군이 주둔했다. 그리고 맞은편 서베를린은 미군 주둔지였다. 즉, 글리니케 다리는 그 살벌한 미소 냉전 시기에 미군과 소련군이 직접 대치하는 최전선이었던 것이다. 미군과 소련군이 직접 대치한다는 것은 까딱하면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미군과 소련군은 상대방의 포로를 이 다리에서 비밀리에 교환하기도 했다. 다리의 양쪽 끝에 총 든 군인이 엄호하는 가운데 포로가 자기 진영으로 걸어가는 영화 속 장면이 실제로 일어난 장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글리니케 다리에 ‘스파이 브릿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더 이상의 세계대전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기에 적대적인 두 진영이 총구를 겨누고 대치하고 있다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환경이 바뀔 수도 있고, 우발적인 실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독일이 통일되면서 그 일말의 불씨는 완전히 사라졌다.
불씨가 불꽃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불꽃이 큰 화재를 일으킨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씨를 구경만 하는 사람도 없다. 통일은 불씨를 지우는 작업이다. 혼자 꺼질 불씨였다면 통일의 가치는 0원이지만, 불씨를 꺼트림으로써 수천만 명의 목숨을 구하고 수십조 원의 재산을 지켰다면 그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통일의 가치는 최소 0원에서 최대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른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도 그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다. 아니, 돈으로 환산하는 자체가 비논리적이다. 그래서 통일에 대해 유불리를 계산하며 주판알을 튕기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불씨를 구경만 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든 꺼트리려 노력할 것인가의 차이는 매우 크다.
K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생각한다. “당시 군인들은 이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을까? 그럴 리 없지. 당장 오늘 하루 무탈하면 그것으로 감사하지 않았을까?”
J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지금 우리는 그 시기를 영화로 보고 있잖아. 영화 같은 일이 매일 벌어졌겠지. 그것도 슬픈 영화.”
머리로 이해하지 말자. 이 풍경을 근심 없이 볼 수 있음에 감사하자. 슬픈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음에 감사하자. 불씨가 꺼졌다는 것에 주목하자.
그리고 잊지는 말자. 지금 내가 사는 땅에는 불씨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그게 아직 큰 불길로 번지지 않고 있을 뿐임을. 하지만 불씨가 살아있는 한 불이 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리뷰를 보고 싶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에서 숱하게 반공 포스터와 통일 포스터를 그렸고, <간첩 잡는 똘이장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통일을 TV 뉴스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기억을 접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리뷰입니다. 특별히 베를린에서 본 통일의 리뷰를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전합니다.
(매주 화,목,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