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덴부르크문 & 포츠담 광장
브란덴부르크문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콜로세움, 런던의 빅벤처럼 한 도시에서 ‘딱 하나’를 고르라고 할 때 모두가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명소가 있기 마련이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는 그 역할을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er Tor)이 맡고 있다.
베를린의 랜드마크 브란덴부르크문은 ‘개선문’이다. 지금의 독일보다 앞선 시기, 독일 민족이 가장 강력한 힘을 떨친 프로이센 왕국(과 그 힘을 이어받은 독일제국) 시절의 찬란한 영광을 상징하는 곳이다. 여담이지만, 프로이센은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로 꼽는다. 군국주의라 함은, 군사력이 곧 국력이고 군대가 곧 국가의 핵심인 나라였다는 것. 그런 나라에서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거나 돌아올 때 영광스럽게 지나가도록 개선문을 만들었으니 브란덴부르크문이 독일 역사의 가장 찬란한 시절을 상징하는 명소임은 분명하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떠나서, 브란덴부르크문 자체가 참 거대하고 멋들어져서 베를린 여행 중 반드시 찾아가게 된다. 야경도 예쁜 관계로 낮에 갔어도 밤에 또 가곤 한다. 지금은 이 부근에 대사관 등 외교 관련 시설이 많다 보니 주변 풍경이 고급스럽고 시야도 탁 트여 멋진 사진을 남기기 딱 좋다.
그런데 꼼꼼하게 주변을 살피는 K의 눈에 안내판이 보인다. 거기에는 옛날 사진과 설명이 담겨있다. 독일 분단 시절의 브란덴부르크문 사진이 보인다. 그리고 사진 속에는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는 펜스가 있고 총 든 군인이 있다. 독일 분단 시절 브란덴부르크문은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브란덴부르크문 자체는 동베를린에 속하였고, 그 뒤로 베를린 장벽이 놓여있었다. 당연히 여기는 군사지역이므로 일반인은 지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독일인에게는 민족 역사의 찬란한 상징이기에 분단 중에도 먼발치에서 구경하려고 동베를린에서도, 서베를린에서도, 브란덴부르크문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J와 K는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브란덴부르크문의 저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또 열심히 사진을 찍고 관람했다. J가 갑자기 묻는다. “지금 이상한 거 못 느꼈어?” K는 어리둥절하다. 이상할 게 없었는데 뭘 말하고 싶은 거지?
J의 설명은 간단했다. “3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문을 통과해서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그 말은 사실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독일 통일이 가시화되면서 1989년 서독 총리 헬무트 콜(Helmut Kohl)이 걸어서 동베를린으로 넘어가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때 헬무트 콜 총리가 지나간 관문이 브란덴부르크문이었다. 총리가 걸어서 통과한 것이 세계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꽉 막혀있던 곳을 J와 K는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중이었다.
민족의 상징과 같은 곳이어서 꼭 구경은 하고 싶지만 갈 수가 없어서 먼발치에서 망원경으로라도 구경하던 유적이다. 그게 열렸다. 당연히 그 시절을 살던 독일인이라면 죽기 전에 여기를 지나가는 게 일생일대의 버킷리스트 아니었을까? 그 소망이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개선문도, 몇십 년 전에는 모두가 죽기 전 한 번은 지나가고픈 소망을 가진 그런 곳이었다.
J가 K에게 미션을 준다. “자, 지금부터 너의 상상력을 테스트할 거야. 눈을 감고, 여기가 막혀있고 총 든 군인이 지키고 있어서 지나갈 수 없는 그런 살벌한 곳이야. 그러면 이 주변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봐. 그리고 눈을 떠서 너의 상상과 현실을 비교해봐.”
K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저 건물은 없었겠지, 장벽이 있었으니까. 저것도 없었겠고, 저렇게 높은 빌딩을 지을 순 없을 테니까.” 하나씩 따져보니 이 주변의 모든 건물이 다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다.
J가 다시 묻는다. “여기가 막혀있다면, 과연 지금 서독은 글로벌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지금 독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권위를 가진 나라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뛰쳐나간다고 하니 독일이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어 한다. 중동에서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든다고 하니 독일이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어 한다. 유럽 바깥의 일에도 입장표명을 요구한다. 태국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때, 홍콩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때, 세상은 독일의 입장을 궁금해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독일이 강경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했다. 지난 세기말까지 세계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미국이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어 했듯 지금의 독일은 세계의 질서를 리드하는 강국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수도 한복판에 흉물스러운 장벽이 놓여있고, 자기 민족의 역사적인 유적 하나도 자유로이 구경할 수 없으며, 그 주변은 황량한 허허벌판이나 폐허가 펼쳐져 있을 서독에게 그런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으리라.
J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통일 전 서독이 세계 4위 경제 대국이었어. 하지만 서독의 부유함을 부러워할지언정 아무도 서독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 지금 독일도 세계 4위 경제 대국이야.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독일의 말을 들으려고 해. 그 차이가 뭘까?”
당시 서독의 역량과 지금 독일의 역량에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부유함이 기준이라면 당시 서독은 이미 유럽에서 가장 센 발언권을 가진 나라였어야 한다. 잠재력도, 경제력도 아니다. 지금의 독일이 가진 힘의 권위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고 거기에서 파생한 문제를 극복하여 새로운 세상을 연 ‘경험치’에서 온다. 꾸준히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하며 ‘선한 일’로 마일리지를 착실히 모은 덕도 무시할 수 없겠다.
“일본과 중국이 아무리 부유해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그 때문일까?” 논란의 여지가 있는 K의 발언이지만 J는 굳이 부인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선을 긋는 건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 분단은 독일 민족이 나아갈 길에 아주 지독한 한계선을 그었다. 그 한계 내에서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서독조차도 그 선을 넘는 ‘진짜 기적’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선을 지우니 한계도 지워졌다. 한계가 사라지니 똑같은 세계 4위 경제 대국의 지위가 하늘과 땅만큼 달라졌다.
포츠담 광장
J가 다시 K를 이끌고 장소를 옮긴다. 10분 정도 걸어가니 고층빌딩 몇 채가 나란히 조화를 이루며 높이 솟아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빌딩 숲’ 속에 사는 J와 K의 시선에 이 정도 고층빌딩이 엄청나게 대단하거나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독일에서 이 정도로 고층빌딩이 캠퍼스를 이룬 사례는 거의 없어서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은 확연히 눈에 띈다.
J가 한쪽을 가리킨다. “저기 시계탑 보여? 시계 위에 신호등 보이지? 다섯 방향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어. 포츠담 광장은 1900년대 초 유럽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았다고 해. 그러다 보니 사고도 많았나봐. 결국, 높은 위치에 신호등을 설치해서 차량과 보행자의 흐름을 통제한 거지.”
그리고 J는 다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게 독일 분단 시절 포츠담 광장이거든.”
K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황량한 공터뿐이다. 지금 하늘 높이 솟아있는 빌딩도 없고, 100년 전에 신호등이 필요했던 어마어마한 교통량도 없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공터일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어. 바로 여기가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거든.” J의 설명을 들으며 K가 주변을 둘러보니 베를린 장벽의 잔해가 보인다. 가까이 가 보았다. 바닥으로 짙은 선이 그어져 있다. J가 설명한다. “그게 원래 베를린 장벽으로 동서가 갈린 자리야.”
광장의 한복판에 선을 그어 둘로 갈라버린 셈. “당연히 그 양쪽으로 군사 지역이 되어 출입을 통제했겠지. 아무도 오갈 수 없고 아무것도 지을 수 없는 땅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이런 모습이구나. 고층빌딩도 생기고, 엄청난 통행량에, 사람도 많고.” K는 사진 속 공터와 지금의 번화가를 비교한다.
만약 독일이 아직 분단 중이라면 지금 포츠담 광장은 여전히 황량한 벌판이고 사람들의 왕래가 차단된 제한구역일 것이다. 지금의 번화가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과연 이런 모습이 펼쳐지는 서독이 세계를 리드하는 강국이 되었을까? 세계 4위 경제 대국이라 해도 세계의 질서에 영향을 주는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K는 포츠담 광장 바닥의 선을 바라본다. 베를린 장벽이 놓였던 그 자리. 선을 긋고 갈라버리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 선이 사라진 지금, 독일은 한계를 넘어 볼륨을 키워 더 큰 미래를 만들어냈다. 물리적인 선을 그어서 막아버리는 것, 선을 지우고 열어주는 것, 그 차이는 누가 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해야 깨닫는 게 아니다. 직접 보면 두뇌가 아니라 심장에 박히는 깨달음이다.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자동차 사이로 J와 K는 선진국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가장 번화한 시가지를 탐색한다. 너무나 일상적인 이런 풍경이 ‘선을 지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실감한다.
“막힌 게 열리니까 참 좋다.” 지금도 작동하는 100년 전 신호등을 보며 K가 읊조린다.
<리뷰를 보고 싶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에서 숱하게 반공 포스터와 통일 포스터를 그렸고, <간첩 잡는 똘이장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통일을 TV 뉴스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기억을 접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리뷰입니다. 특별히 베를린에서 본 통일의 리뷰를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전합니다.
(매주 화,목,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