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기념관 & 테러의 토포그래피
베를린 장벽 기념관
K가 소리쳤다. “뭐야 이게?” 그리고는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넋을 놓고 바라본다. K의 초점 잃은 눈을 보며 J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K가 바라보는 그곳에는 칙칙하고 우중충한 벽이 있다. 그 벽에는 예술성을 느끼기 어려운 낙서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J와 K는 지금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을 보고 있다.
베를린 장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었고 베를린도 동서로 분단되었을 때 동서의 경계에 놓인 장벽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휴전선의 철책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철책이 아니라 콘크리트 벽을 세워 완전히 물리적으로 두 공간을 나눠버린 그들의 ‘유난스러움’ 정도로 인식되는 곳이지 크게 피부로 와닿는 장소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요즘 세상에 베를린 장벽의 사진 또는 영상을 접하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여기에 다녀간 유명 여행 예능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살면서 베를린 장벽을 모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그곳을 막상 내 두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느껴지는 그 헛헛한 감정은 몇 가지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일 분단 및 베를린 분단의 결정은 1945년부터 내려진 것이지만 베를린 장벽은 그보다 한 참 뒤인 1961년 만들어졌다. 차츰 동독과 서독의 경제 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삼엄한 경비를 뚫고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동독과 소련이 콘크리트 벽을 세워 물리적인 장벽을 쳤다.
당연히 심미성을 추구할 일은 없다. 기능성에 충실하여 서베를린을 완전히 둘러싸 고립시키는 흉한 벽이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장벽 상단의 둥그스름한 마감은 탈출을 불편하게 만들려는 장치라고 한다. 다급한 순간에 편하게 움켜쥘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탈출을 지연시켜 저지하려는 목적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베를린 장벽을 반대하지 않았어. 차라리 이렇게 차단해 우발적 갈등을 예방하는 게 더 이롭다고 생각했지.” J가 K에게 유일하게 한 말이다.
베를린 장벽이 놓인 뒤에도 동베를린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의 일부는 성공했으나 일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였다.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만난 페터 페히터처럼. 이렇게 물리적으로 갈라버린 벽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워낙 큰 인상을 남겼기에 베를린 장벽은 이후 냉전과 분단의 상징으로 세계에 알려진다.
그리고 독일 통일 후 이제 쓸모가 사라진 베를린 장벽은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하였으나 일부 구간은 기념물로 남겨두었다. 보기 좋으라고 남겨두었을 리는 없고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말라는 교육적 목적이 강했다. 그 중의 가장 긴 구간에 걸쳐 장벽이 남아있는 곳이 베를린 장벽 기념관(Gedenkstatte Berliner Mauer)이다. K가 할 말을 잃게 만든 곳도 여기다.
누가 돈 주고 만들라고 해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흉하게 생겼다. 이게 어떤 특정 구간에만 만든 게 아니라 서베를린을 완전히 둘러싸 버렸으니 지독한 광기의 산물이다. 그래도 동독에는 이게 필요했다. 주민의 이탈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으니 앞뒤 가릴 게 있었을까. 광기의 지배를 용인하는 비상식적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던 셈이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 남은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벽을 보며 K는 생각했다. “내 눈에도 이렇게 꼴 보기 싫은 흉물인데, 당시 베를린 시민이 보기에는 어땠을까.” 가뜩이나 매일 눈에 밟혔을 테니 당연히 좋았을 턱이 없다. 독일 통일의 서막을 연 그날 양쪽의 시민들이 직접 장비와 도구를 들고 와 장벽을 부숴버린 것에서 그 오랜 응어리를 짐작할 수 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은 입장이 필요한 분리된 공간이 아니다. 그냥 길거리에 장벽이 남아있고, 장벽 주위로 안내문과 시청각 자료를 세워 분단 시절의 아픈 역사를 공개하고 있으며, 기록관이나 전망대를 따로 만들어 좀 더 입체적인 학습으로 인도한다. 대부분 자료는 독일어와 영어로 기재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역사적인 사건이 서술되어 있다 보니 ‘회화 영어’에 익숙한 K로서는 100% 이해하기에 어려웠으나, 굳이 텍스트를 독해하지 않아도 사진과 영상이 주는 충격이 강렬했기에 베를린 장벽을 마주하는 감정의 체험은 충분히 가능했다.
K는 그동안 관람했던 영화를 떠올려본다.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K에게 베를린 장벽을 능가하는 영화적인 스토리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현실적이지 않아. 이런 세상이 존재했다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지금 내가 영화를 만들어도 이렇게는 못 할 것 같아. 이건 영화로 만들어도 망할 거야. 누가 이런 막장 드라마를 만든 거야? 이처럼 작위적이고 극단적인 스토리로 뭘 만들겠어.”
나중에 베를린 장벽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K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현장에 있었지. 그런데 이게 불과 몇십 년 전에는 현실이었지.” 어쩔 수 없이 생각의 꼬리는 여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게 지금 나의 현실과 뭐가 다르지? 수도 한복판을 잘라버린 베를린 장벽과, 국가의 허리를 끊어버린 휴전선이 뭐가 다르지?” 글쎄, 다른 게 없다. 남 이야기할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사는 현실이 그렇다. 영화로 찍으라고 해도 개연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어 욕먹고 시원하게 망할 게 확실한 스토리, 그게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다.
테러의 토포그래피
K가 사진첩을 뒤적이다 또 다른 베를린 장벽의 사진을 보았다. 너무 작위적이고 극단적이어서 영화로도 찍을 수 없을 법한 그런 현실의 흔적을 마주하고는 혼이 빠진 K를 토닥이며 J가 데리고 간 곳. 거기에도 길게 펼쳐진 베를린 장벽의 원형 그대로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이름도 까다롭다. 테러의 토포그래피(Topographie des Terrors). 일단 토포그래피라는 단어 자체가 어려웠다. J에 따르면 “토포그래피는 지형학이라는 뜻인데, 나치 집권 당시 독일이 유럽 각지에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어떤 공포(테러)를 자행했는지 스스로 고발하고 성찰하는 기념관”이라고 했다. 이런 공포의 결과로 전쟁이 벌어지고 독일이 분단이라는 비극을 초래하였음을 이야기하는 목적인 셈.
나치 독일의 만행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고 그것을 합리화하였던 광기의 시절. 독일로서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일 것이다. 거짓으로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더라도 굳이 제 손으로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테러의 토포그래피에서 사진과 영상을 곁들여 과거의 범죄를 낱낱이 고백한다. 그리고 그 위로 베를린 장벽의 잔해가 길게 놓여있다. “이토록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벌 받은 게 베를린 장벽이구나.” K의 느낌이 괜한 망상은 아닌 것 같다. 인과는 분명히 성립하니까.
K는 테러의 토포그래피에서도 베를린 장벽을 가만히 마주한다. 여기에는 어지러운 낙서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치 베를린 장벽이 원래 이렇게 생겼다는 걸 보여주듯 삭막한 잿빛 콘크리트 벽이 길게 늘어서 있고, 누군가의 망치질로 깨진 듯한 파손된 구멍 사이로 굽어진 철근이 보인다. 그 구멍 너머에는 자동차와 행인이 분주하게 오간다.
“이게 뭐라고 몇십 년 동안 한 민족을 갈라놓았을까. 이게 뭐라고 이걸 넘다가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까.” 아무래도 K는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긴, 막장 드라마를 머리로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K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래, 확실해. 이런 스토리는 영화로 만들어도 분명히 망해. 현실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잖아. 그런데 이게 현실이었다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K가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게 지금 나의 현실이라니.”
영화로 만들어도 망할 게 분명한 비현실적인 현실. 누구나 막장 드라마라며 손가락질하고 비웃어 마땅한 현실. 어쩌면 베를린 장벽은 내 눈에 그 흉물이 보이기 때문에 공허한 감정이 확연히 느껴졌는지 모른다. 우리의 현실은 당장 나의 일상에서 눈에 밟히는 흉물이 없으니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인지 모른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나니 K는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휴전선의 존재가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 다르게 다가온다. 만약 서울 한복판에 휴전선이 있었다면 본능적으로 분단을 거부하고 극복하려는 마음이 더 강했으리라, K는 그렇게 생각했다. “재미없는 막장 드라마를 매일 보면서 행복을 느낄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리뷰를 보고 싶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에서 숱하게 반공 포스터와 통일 포스터를 그렸고, <간첩 잡는 똘이장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통일을 TV 뉴스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기억을 접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리뷰입니다. 특별히 베를린에서 본 통일의 리뷰를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전합니다.
(매주 화,목,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