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타워 & 쿠어퓌르스텐담
TV타워
“저거 참 동그랗다. 남산타워와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 K의 눈에 베를린 TV타워(Fernsehturm)은 뭔가 특이하다. 직선으로 위로 쭉쭉 뻗은 타워만 보다가 한가운데 둥그렇게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은 흡사 꼬치에 달린 탕후루 같다. 요즘에는 남산타워라고 부르면 ‘옛날 사람’ 취급받는다는 말을 해주려다 삼킨 J가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이 말한다. “조금 더 쳐다봐. 그리고 뭔가 이상한 걸 찾아봐.”
K는 한참을 바라본다. 이미 해가 중천인데, 점심 생각을 잊고 TV타워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자꾸 쳐다보니 이제 눈만 아픈데 대체 뭐야?”
J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한다. “네가 눈 아픈 게 내가 하고 싶은 그 말이야.”
그제야 K는 짐작한다. “저거 왜 이렇게 눈부신 거야?” TV타워 복판에 동그랗게 붙어있는 저 구(球) 모양의 녀석이 문제였다, 한낮의 햇빛을 받아 열심히 빛을 반사하며 눈을 아프게 한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선글라스를 꺼내 눈부심을 해결한 뒤 K가 다시 올려다본다. TV타워는 십자 모양으로 햇빛을 반사 중이다.
TV타워의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독은 정부 수립 20주년을 뻑적지근하게 기념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서독이 깜짝 놀라 찍소리도 하지 못할 대단한 것으로 기념하고 싶었다. 멀리 서베를린에서도 보여야 하니 기념비는 높이 솟을 수록 좋다. 동독은 365m 높이로 TV타워를 만들었으니 당시 기준으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TV타워 중간에 구(球) 모양의 구조물을 더하였으니, 이것은 그 시기 공산주의 진영이 합심하여 만방에 자랑하고 싶었던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본딴 것이다.
그러니까 동독의 의도는 매우 노골적이다. 스푸트니크를 연상케 하는 것을 동베를린의 아주 높은 곳에 박제하여 걸어두면, 1년 365일 서베를린에서 그것을 보며 공산주의 진영의 우수성에 고개를 숙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기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 스푸트니크 위성을 달아두었으니 이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 심볼이 분명하다.
그런데 높은 곳에 걸린, 1년 365일 눈에 밟히는 저 스푸트니크 같은 둥근 것을 바라보는 서베를린에서는 정작 엉뚱한 것에 시선이 꽂혔다. 십자 모양으로 반사되는 빛 때문에 괴로워진 것이다. 해가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쯤 TV타워에 반사된 빛이 서쪽을 향해 강하게 비추었다. 유독 십자가 모양으로 반사되었기에 더욱 눈에 띄었으리라.
눈부심에 선글라스를 꺼내든 K를 바라보며 J가 말한다. “그 시절 서베를린에서 맨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괴로웠겠지?”
이어지는 J의 설명에 K는 잠깐 귀를 의심한다. “그 시절 서베를린에서는 이 빛을 ‘교황의 복수’라고 불렀다지.”
공산주의 정권은 기본적으로 종교를 싫어한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서 교회 또는 성당을 대놓고 탄압할 수는 없으나 전쟁으로 파괴된 교회 또는 성당을 재건하거나 신앙 활동을 복원하는 것은 철저히 외면하고 때로는 훼방을 놓기도 했다. 서베를린에서는 이러한 공산주의 정권을 비꼬는 의미로 TV타워에 생긴 십자가를 일컬어 ‘공산주의 정권이 종교를 탄압하느라 십자가를 제거하니 하늘에서 십자가를 내려준 것’이라는 레토릭으로서 ‘교황의 복수’라고 조롱했던 것이다.
그 조롱이 꽤나 강력했는지 동독은 십자가 모양의 빛 반사를 막기 위해 외장재 변경 등 수를 써보았으나 실패했다. 본디 구체(球體)에 빛이 반사될 때에는 점 모양으로 빛을 쏘는 게 일반적이지만 TV타워는 설계의 특이점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반사되었다는데, 설계한 건축가도 이를 예측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K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유치하기 그지없구나.”
J도 같은 생각이다. “이념이 사람을 한순간에 유치하게 만들지. 당사자들은 여기에 목숨을 걸었을지도 몰라. 우리나라도 한때 남북이 서로 높은 탑을 짓는다고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스푸트니크 위성을 닮은 것을 높은 곳에 설치해 상대편이 1년 365일 보게 만들려는 자도, 거기에 비친 빛 반사를 가지고 신까지 소환해 ‘복수’라고 조롱하는 자도, 지금 와서 보면 제정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독한 경쟁심에 함몰되어 이성을 잃고 발톱을 세우던 광기 어린 시기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십자가 모양으로 반사되는 빛으로 나타난다.
TV타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문제의 구(球)로 올라 베를린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실감 나지 않지만, 이 구(球) 모양의 건축물 부분만 7개 층높이와 맞먹는다고 한다. TV타워는 남산타워 같은 대도시 송신탑이 제공하는 액티비티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직하게 제공한다.
“굳이 올라갈 필요는 없어.” J는 줄이 길게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K에게 일러준다. “TV타워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 특히 서쪽으로 반사되는 십자 모양의 빛에 눈부심을 겪는 것, 그게 핵심이야.”
K는 선글라스를 챙기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려 ‘교황의 복수’를 눈부심 없이 바라볼 무기가 될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쿠어퓌스르텐담
“뭐야, 그냥 명동이잖아.” K는 다시 어리둥절해졌다. 넓은 대로, 그 양편의 커다란 상업건물들, 이름난 백화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브랜드의 광고판. 서울 명동 한복판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이곳은 쿠어퓌르스텐담 거리(Kurfurstendamm), 줄여서 쿠담(Ku’damm)이라는 애칭으로 현지인이 부르는 번화가다.
K가 쇼핑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 쇼핑할 생각은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다. “내가 지금 여기 쇼핑하러 온 줄 알아? 그럴 거면 그냥 주말에 지하철 타고 명동에 가도 돼.”
J는 아무 말 없이 K를 백화점으로 인도한다. 1층부터 슬렁슬렁 꼭대기층까지 구경해보았지만, K는 여전히 심드렁하다. 명품 판매장도 보이고 푸드코트도 보이는 그냥 평범한 백화점이니까. “내가 이런 거 보러 베를린까지 온 게 아니라니까.”
바깥으로 나와 J가 답한다. “여기 백화점 이름부터 다시 읽어볼래?” 거대한 건물 외벽 높이 큼지막하게 카우프하우스 데스 베스텐스(KAUFHAUS DES WESTENS)라고 적혀있다. 직역하니 ‘서쪽의 백화점’이라는 뜻. 그 약자로 카데베(KADEWE)라 불리는 이곳.
냉전 시기 차츰 경제 격차가 벌어지는 중에 서독이 동독을 향해 자랑하기 가장 좋은 것은 경제력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풍요로운데, 너희는 끼니나 챙겨먹냐?” 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 비단 분단 독일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첨예하게 다투는 현장에서 늘 결론은 자본주의 진영의 ‘머니스웩’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카데베가 말하자면 서독의 ‘머니스웩’인 셈.
J가 말한다. “동독은 스푸트니크를 본떠 자랑했고, 서독은 부유한 경제력으로 자랑했지. 내가 상대방보다 잘났다는 우월감을 느끼려고. 막말로 그런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라이벌이라는 게 그렇잖아. 상대의 기를 죽이며 짜릿함을 느낄 게 필요하다고.”
J는 카데베 맞은편 전철역으로 K를 안내한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지하철역으로만 보였던 비텐베르크플라츠역(Wittenbergplatz)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몇십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영화 속에서 볼 것 같은 옛날 매표소, 개찰구, 광고판 등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광고판에는 그 옛날 백화점 광고가 그대로 걸려있다. 열심히 소비를 조장하던 그 시절의 문구가 눈에 띈다. 수많은 사람이 시간표를 보며 뜀박질하는 지하철역조차 수십 년 전 시간을 박제한 박물관이 되어 있다. 보여주기 위한 전시장이 아니라, 여전히 옛 매표소에서 지하철표를 팔고, 옛 매점에서 신문과 잡화를 팔고 있으며, 옛 시계도 작동한다. 그런데 거기에 지하철 도착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처럼 요즘 문물도 시치미 뚝 떼고 함께 어깨를 맞댄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 과거를 만나는 재미, 현재와 과거가 어우러지는 재미, 베를린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매력포인트라고 K는 생각했다.
유치한 경쟁의 결과물. 동독에게는 TV타워가 그것이었고, 서독에게는 쿠어퓌르스텐담과 카데베가 그것이었다. K는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면 위성 발사를 자랑한다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지은 너희도 유치하고, 공허한 사치와 향락으로 ‘머니스웩’에 우월감을 느낀 너희도 유치해. 둘 다 똑같아.”
그런 K를 보며 J는 잠깐 생각했다. “남의 나라 일이니까 그렇게 유치하다고 논평할 수 있지. 그런데 우리나라라고 뭐 다른 게 있을까?” 그렇다. 한반도 바깥의 제3자 시선에서 남북 분단을 보면 똑같이 말할 것이다. 그 경쟁, 유치하다고.
J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부연한다. “서독에는 세 명이 모여야 담배를 피운다는 일화가 있었대. 그 시절에는 라이터가 없으니까 성냥을 태워야 하는데, 나 혼자 담뱃불을 붙이자고 성냥 하나를 써버리는 게 아까운 거야. 세 사람이 모여야 성냥 하나를 버릴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거지. 그 정도로 독일인은 민족성 자체가 검소한 사람들이야. 지금 명품매장이 즐비한 카데베 백화점도 독일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좋아해.”
그 정도로 검소한 사람들도 냉전 중 우월감을 느끼려니 이성을 잃는다. 유치한 경쟁에 빠져든다. “아니, 남의 일이니까 유치하다는 생각이라도 하지. 만약 내가 지금 그 시대에 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K는 고개를 젓는다.
어쩌면 K도 그 상황에 놓였더라면 “이 시국에 호화 백화점이 웬 말이냐”고 반대하기보다는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풍요롭지, 메롱”이라고 상대방을 향해 우월감을 느끼며 통쾌했을 것 같다.
남의 일이니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어쩌면 한국 사람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가장 비객관적으로 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남들은 그런 한반도의 현실을 보며 누구의 편을 들기보다는 유치하다고 혀를 차고 있을지 모른다. K는 오늘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리뷰를 보고 싶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에서 숱하게 반공 포스터와 통일 포스터를 그렸고, <간첩 잡는 똘이장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통일을 TV 뉴스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기억을 접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리뷰입니다. 특별히 베를린에서 본 통일의 리뷰를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전합니다.
(매주 화,목,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