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포자의 서평
[#hh서평 - #최무영교수의물리학이야기 ]
물리… 물리는 언젠가 시험에서 4점을 맞은 이후로 쳐다도 보지 않은 과목이다. 찍어도 그것보다는 잘 맞겠다는 친구들의 농담과 실제로 찍었음에도 그 점수를 맞았던 것을 계기로 내 인생에서 물리는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과목이 되었다. 나에게 물리란, A와 B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억지로 끄집어내서 숫자로 묶어버리는 듯했다. 물리와 비교해서 많이 좋아했던 화학과 생물은 그래도 보이는 것들의 구조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했으니 더 와 닿았다. 분자식의 해석, 원자 모양에서부터 적혈구의 산소 운반 등.. 전자기력, 중력, 척력, 양력, 부력보다는 선명하지 않은가!? 제일 좋아했던 앙금 생성 반응!, 이름도 귀엽다.
아직도 물리란 ‘A가 B가 됐을 때 (보이지 않는) C를 (무조건 외워야 하는 숫자들로) 구하시오.’로 정리된다. 물리학 관련 칼럼이나 책을 읽을 때도, 원리가 중요했지 그 원리가 숫자로 표현되어 어떻게 정리되는지는 휙휙 넘긴다. 그래도 이런 무지렁이를 위해 친절하게 책을 써주신 분, 추천해주신 분을 생각해서 아주 밝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갔다. 예상했던 것처럼 따듯하고 사려싶은 교수님의 이야기는 물리 포기자도 완독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물리란 ‘어떻게’도 공부하지만, ‘왜’를 고민하는 철학적인 분야란 걸 알았다. 의도적으로 책에 수식을 제거해주셔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 원리가 명확해졌고, 내가 관심을 꺼두었던 분야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제일 신기했던 것은 쿼크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이해를 떠나서 내가 배웠던 원자 밑,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것도 얼추 밝혀졌다는 게 놀라웠다. 곧 교과서에 실리겠구나 했다. 그리고 물리는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참 대담했다. 내가 아무리 한글 모양을 외국인처럼 받아들이려고 해도 절대 안 되는 것처럼, 어떤 굳어진 사고는 보는 관점을 고정시킨다. 물리라는 것도 세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거나 규정되니 않은 힘을 볼 수 있게, 혹은 해석할 수 있게 하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나중엔 누구나 중력장이나 다차원을 이해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정면에서 보던 것들을 측면에서 봤더니 암흑물질이 보인다던가.
책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문득, ‘과학사’는 왜 정규 과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를 매주 1시간씩만 틀어줘도 될 텐데’라는 농담을 하면서 와 닿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했더랬다. 물론 이런 고민과 시도는 멋진 선생님들이 하고 계시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학생일 때 교육 커리큘럼보다도 그냥 내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과학사가 정규과목이 되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년도는?’이라는 시험 문제를 외울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인상 깊었던 단어 표현도 기억에 남는다. ‘물 싫어 속성, 쩔쩔맴, 뭇 알갱이계’ 등… 확실히 한글 표현이 더 와 닿는다. 그리고 괜히 어휘력이 늘어나는 기분도 받고. 복잡계에서 일어나는 ‘떠오름’ 현상은 단어 표현도 인상 깊지만, 그 복잡성의 마술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나의, 너의, 모두의 마음에서부터, 사회현상 등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떠오르는 각종 현상과 마음들은 내가 살아있다는 경의와 우주를 포함한 이 세계가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달까. 환원주의 관련 책을 읽었을 땐 이제 곧 세상을 다 알 것 같다는 떨림이 있었는데, 이젠 반대로 이것만큼 안 것도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제목과 달리 아주 술술 읽혔다. 난 단지 책 읽는 수고만 했을 뿐인데, 물리학 기피증은 살짝 사라진 기분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 어려워하는 것, 기피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먼 일인지 다시금 깨닫고 겸손해진다. 누군가가 좋다고 말해도 내가 싫다는데 어쩔 거야의 벽. 그 벽을 깨려는 전문가의 사려 깊음이 느껴져서 좋다.